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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L'amant/L'amant

태연정인 단편 - Early Christmas Party 上

 

Early Christmas Party 上

 

 

                         

                                  Written by Angelique(carna)

 

 

 

 

 

 

 

"이번주 주말저녁 다들 시간 비워 두도록 해"

 

부장검사실에 다녀오는 태연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꺼낸 얘기다.

 

"저희 다요?"

 

정인의 질문에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한숨을 내쉰다.

 

"주말에 크리스마스파티가 있다는군. 알만한 법조계 인사들은 다 참석하는 모양이야. 말은 안하지만 정,재계 인사들도 있겠지 싶고..

아무튼.. 지난 연쇄살인 사건 해결한 팀원들 전원 참석 시키라고 했다는군. 알다시피 매스컴에서 워낙 크게 떠들어놔서 인거 같아."

 

눈을 반짝이는 순범과 동만을 흘깃 쳐다보던 태연의 시선이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는 정인에게 머문다.

 

"알아. 달갑지 않다는거. 나도 마찬가지고. 근데, 사양하겠다고 해도, 들으려고도 하질 않으니 어쩔 수 없잖아. 대신 대충 인사만 하는걸로

얘긴 해놨어. 그러니까 그렇게들 알고 시간 빼놓도록해. 참, 형이랑 최동만은 적당히 점잖은 정장 준비하도록 하고, 유정인은..  "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정인을 내려다보던 태연은 고개를 저으며 그대로 집무실로 들어가버린다.

 

 

"허 !! ㅁ,뭐래요? 저 제스쳐는?"

 

"그야, 유검이 또 딱딱한 바지정장 같은거 입고 나타날까봐 걱정되서 그러는거죠 뭐"

 

"아니 뭐 어때서요? 동만이랑 황형사님은 정장 입으라면서요! 난 왜 안되는데요?!"

 

"어허 유검! 파티! 래잖아요. 크리스마스 파티! 그 뭐냐 파티라는 단어를 들으면 뭐 딱 떠오르는거, 그런거 없어요?"

 

"떠오르긴 뭐가 떠올라요"

 

"에헤이~ 그 있잖아요. 남자들은 턱시도에 나비넥타이 딱~ 매고! 여자들은 우아~하게 드레스 촤악~ 빼입고 뭐 그런거. 몰라요?"

 

"뭔 레스요? 드레스? 됐거든요. 아 몰라요 몰라."

 

 

 

순범이 또 쓸데없는 잔소리를 할것 같아 정인은 화장실로 도망쳐버렸다.

세면대 앞에서 거울속의 제 모습을 들여다보는 정인의 입에선 몇번이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사실 정인의 속마음엔 그런 자리를 핑계삼아서라도 조금더 여성스러운 모습,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꾸민 모습을 태연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램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속보이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을 다르게 봐주지 않는다면.. 그때 느껴야할 창피함과 실망감을

감당할 자신 역시 정인에겐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정신 차리자 유정인. 욕심내지 않는다고 했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린 정인은 스스로를 다그치듯 차가운물로 세수를 했다.

 

 

 

 

한겨울 찬물 세수로 코끝과 볼까지 발갛게 얼어버린 정인에게 순범이나 동만이 무슨말을 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듯 집무실 문을 연

태연이 정인을 불러들였다.

 

 

 

"무슨일로 부르셨어요?"

 

툴툴거리며 책상앞에 와서 서는 정인을 올려다 본 태연이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정인에게 내민다.

손수건을 받을 생각은 않고 말똥말똥 눈을 깜빡이는 정인의 손에 태연은 억지로 손수건을 쥐어준다.

 

"물기 제대로 닦아. 감기들기 싫으면"

 

"네? 아.. 괜찮은데.."

 

빤히 쳐다보는 태연의 시선에 차갑게 얼어서 붉어졌던 볼이 이제는 타버릴것 같다.

정인은 재빨리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며 태연의 손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대충 꾹꾹 눌러 닦았다.

 

"정말 출근할때 입는 정장 입고 갈건가?"

 

"네?! "

 

화들짝 놀라는 정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머금던 태연은 곧 표정을 가다듬고 정인을 똑바로 바라본다.

 

"아.. 뭐.. 그거야.. 딱히..마땅히 ... 입을 옷도.. 없고 .. .. 아니 뭐 황형사님이랑 동만이도 정장 입는다고 .."

 

뚫어질듯 똑바로 부딪혀 오는 태연의 시선에 정인은 뒷말은 웅얼거리며 삼켜버렸다.

눈을 어디다 둬야 좋을지 몰라 괜시리 마주잡은 제 손가락만 못살게 굴고 있는 정인의 눈앞에 태연의 손이 불쑥 내밀어진다.

 

"받아. 라울형 전화번호야. 형이 아는곳이 있는모양이니까.. 우선 대충 애기는 해놨어. 라형이랑 만나서 같이 가면 될거야."

 

"네? 어딜.."

 

무슨소린지 몰라 멍한 얼굴로 되묻는 정인에게 핏 웃어보인 태연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출근할때 입는 정장은 안돼."

 

 

 

 

 

 

 

정인이 평소에 입는 정장은 절대 안된다는 태연의 단호한 대답에 결국 정인은 라울과 약속을 잡아야했다.

팀원들과 다같이 꽤 자주 보는편 이지만, 차안에 단둘이 있으려니 입술이 딱 붙어버려 창밖만 내다보게 된다.

결국 또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던 정인은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 왔어요. 정인씨"

 

라울이 차를 세운곳은 청담동의 어느 골목안.

 

"여기가 어디에요?.."

 

"옷가게죠"

 

"옷가게요?"

 

쇼윈도도 없이 짙은색의 목재패널로 덮인 건물의 한쪽으론 겨울이라 앙상한 담쟁이 넝쿨이 매달려 있다.

들어가는 입구 위에 크지 않은 글씨로 J 라고 적혀있을 뿐 어떻게 보아도 라울이 말하는 '옷가게' 로는 보이지 않지만..

들어가보면 안다는 라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한다.

 

쭈뼛거리며 라울을 따라 들어가자 데스크에 앉아있던 단정하게 머리를 틀어올린 직원이 두사람을 맞아주었다.

그녀는 익히 라울을 알고 있는듯 친근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벽난로와 그곁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트리 아래 놓인 선물상자들과 푹신한 패브릭 소재의 소파 그리고, 두툼한 카펫까지.. 마치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듯 너무 따스하고 포근한 

분위기에 정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 오니까 정말 크리스마스 같아요."

 

"맘에 들어요?"

 

라울의 물음에 정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트리 보다는 옷이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요"

 

낯선 목소리에 돌아보자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라울에게 손을 내민다.

 

"오랜만. 왜 이렇게 뜸해? 얼굴 잊어버리겠어."

 

"하하 사는게 바빠서 그러죠. 아, 정인씨 이쪽은 이곳 사장님이자, 디자이너 장유민여사. 장여사님 이쪽은 전화로 말씀드린 유정인검사님. 인사들 나누세요"

 

내미는 손을 마주 잡은 정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욱 훑어본 장여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대한민국 검찰에 이렇게 아름다운 검사님이 계실줄은 꿈에도 몰랐는걸요?. 이런 미인이랑 알고 지내다니 라선생이 참 복도 많네요. 전생에 좋은일을

많이 한 모양이에요. 그렇죠?"

 

"하하하 그런가봅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도 못드는 정인을 대신해 라울이 대답하자 장여사는 찡긋 윙크를 하고는 옷을 골라오겠다며 2층으로 올라간다.

그제야 작게 후우~ 한숨을 내쉬는 정인을 보며 라울이 긴장할것 없다며 웃는다.

 

"근데.. 개인 디자이너 옷이면 비싸지 않아요?.. 한번밖에 안입을 옷인데..."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우선 옷이나 골라보자구요. 다른건 옷 고른 다음에 생각해요. 알았죠?"

 

"그래도..."

 

"연예인 협찬도 해주니까, 정 뭐하면 정인씨한테도 대여 해달라고 하죠 뭐. 그러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예쁜걸로 골라요.알았죠?"

 

라울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걸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져 정인도 조금 마음을 놓았다.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홀짝이고 있자니 한쪽 벽면에 둥글게 쳐져있던 커튼이 젖혀지며 2층으로 올라갔던 장여사가 정인을 손짓해 부른다.

 

커튼 안쪽으로 들어가자 디자인도, 색상도 다른 몇벌의 드레스들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 정인을 기다리고 있다.

 

"유검사님 아니, 이건 좀 너무 딱딱한거 같은데.. 정인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

 

정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맨 앞에 걸린 드레스를 꺼내 정인에게 내민다.

 

"우선 이것부터 입어보죠."

 

장여사가 해주는대로 도움을 받아 입은 첫번째 드레스는 핑크색 쉬폰 튜브탑 드레스.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가슴 부분이 신경쓰여 계속 만지작 거리는 사이 장여사는 말도 없이 앞에 쳐진 커튼을 휙~ 걷어버렸다.

 

"이쪽으로 와봐요 정인씨. 라선생 어때? "

 

소파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이던 라울이 장여사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서며 작게 탄성을 내지른다.

 

"와~ 정말 잘어울리는데요. 근데..."

 

"그런데?"

 

의아한듯 되묻는 장여사에게 가까이 다가간 라울이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한다.

 

"저 드레스를 골라주고 제가 무사할 수 있을까요?"

 

두사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 받는 동안에도 정인은 드레스의 가슴 부분을 끌어 올리느라 바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자자 그럼 다음것도 입어봐야죠?"

 

라울을 한발짝 물러서게 한 장여사가 커튼을 닫고나자 정인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두번째는 검정색 시퀸 소재의 발목을 덮는 길이의 롱 드레스로 접착제라도 발라놓은것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움직일때마다

몸매의 굴곡을 여과없이 드러나게 한다.

 

"불편해요 정인씨?"

 

"조금..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는 정인을 보며 장여사는 호탕하게 웃는다.

 

"뭘 그렇게 어려워해요. 편하게 해요, 편하게. 그럼 일단 이건 보류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세번째 드레스는 오른쪽은 검정색, 왼쪽은 아이보리색으로 된 쉬폰소재의 에이라인 드레스인데, 허리아래로 퍼지는 라인이 무척

아름다웠지만 가슴부분이 깊이 파여있어 가슴골이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정인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이는 모습에 라울은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와~ 정말 멋지네요. 여신이 따로 없어요. 흠.. 그런데 아무개씨는 싫어할지도 모르겠네요. 은근 보수적이라서요. 그 아무개씨가"

 

무슨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정인을 안으로 밀어넣으며 쿡쿡 웃는 장여사와 라울은 이번에도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 받았다.

 

 

네번째 드레스는 짙은 녹색의 레이스소재 원숄더 미니드레스였는데, 몸에 완전히 붙는데다 길이가 너무 짧다며 커튼을 열려는 장여사를

필사적으로 말리는 정인 때문에 라울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예쁜데 그러네.. 하지만 뭐 본인이 싫다면야. 그래요 그럼 다른거 입어보죠 "

 

가슴을 쓸어내리는 정인에게 장여사는 곧바로 다음옷을 내민다.

 

다섯번째는 투피스로 시스루 소재의 베이지색 퍼프소매 블라우스와 발목을 덮는 길이의 검정색 새틴소재 롱 스커트였다.

약간 까실한 망사 소재의 블라우스 안에는 얇은 끈이 달린 같은색상 실크탑을 입었고, 타이트한 하이웨이스트 스커트는 허벅지까지

깊게 슬릿이 들어가 있어 걸을때마다 살짝살짝 다리가 드러나 보였다.

 

잠깐 멍한 표정으로 정인을 바라보던 라울은 침 떨어지겠다는 장여사의 농담에 멋적게 웃는다.

 

"소녀같기도 하고.. 귀부인 같기도 하고.. 우아하면서도 섹시하고.. 이거 점점 더 고르기가 어려워지는데요? 하하"

 

"모델이 훌륭해서 그런거 아니겠어?"

 

장여사의 칭찬에 쑥스러운듯 얼굴이 붉어진 정인은 웃으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옷이 정말 하나같이 다 너무 예쁜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벌만 더 입어보죠. 괜찮죠?"

 

 

마지막 드레스는 미디길이의 슬리브리스 벨벳 드레스로 짙은 와인색이다.

보트넥 타입으로 목선이 깊이 파이지 않은 대신 등쪽이 허리 바로 위까지 브이자로 깊이 파여 있다. 일체의 장식 없이 심플한 디자인으로 특별히

몸을 조이도록 붙지는 않지만 벨벳 소재의 특성상 몸을 휘감듯 흐르는 선이 무척 매력적이다.

 

 

"예쁘지? 예쁜거 알겠는데, 라선생!! 뭐라고 말은 해줘야지?"

 

열려진 커튼 끝을 붙들고 선 장여사가 놀리듯 묻자 라울은 민망한듯 헛기침을 해댄다.

 

"눈을 못떼게 만드네요. 정말.. 내 생각엔 바로 전에 입어봤던 옷이랑 지금 입은 옷 둘중에 하나가 어떨까 싶은데 정인씨 생각은 어때요?"

 

"전.. 이 옷이 좋은거 같아요.."

 

"OK~ 그럼 결정! 이걸로 하고, 손볼 부분 있는지 확인하고 구두랑 클러치 골라야 하니까 2층으로 올라가요. 정인씨."

 

"네? 구두랑 클러치 까지요?.. "

 

"당연하죠"

 

"그치만..."

 

"부담 가질거 없어요. 원래 그런류의 파티에 오는 사람들 누가 어디 드레스를 입었더라, 누가 어디 구두를 신었더라. 다 그렇게 소문이 나게

 되어있는거니까요. 정인씨가 내가 만든 옷 입고 예쁘게 꾸미고 가주면 그게 바로 광고 아니겠어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그런거라니까요. 알았죠? 자~ 먼저 올라가 있어요. 어서"

 

머뭇거리는 정인을 안심시켜 직원과 함께 2층으로 올려보낸 장여사가 곁에 선 라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우리 라선생도 고생했지. 넋빼고 보느라. 정인씨 임자 있다면서 그래도 되는거야?"

 

 

라울은 그런게 아니라며 웃었지만 아무래도 한동안 장여사의 짓궂은 놀림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여 포기한듯 한숨을 내쉬었다.

장여사까지 2층으로 올라가고 혼자남은 라울은 다시금 느긋하게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태연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 혹시라도 정인이 들을지 모른단 생각에 문자를 보내기로 한다.

 

 

- 정인씨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는 영광을 나혼자 누려서 어쩌지? 직접 올걸 그랬다고 후회하는중인거야?

 

- 제대로 잘 골라준거야?

 

- 당연하지 인마! 그나저나 네 녀석만 아니었음 정인씨한테 반할뻔 했는데 말이지.

 

-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비밀이나 잘 지켜.

 

- 그러지 말고 태연아. 정인씨 잡아. 언제까지 지켜만 볼래?

 

- 됐고, 집까지 잘 데려다 주기나해. 지하철 타게 하지 말고.

 

- 그런 걱정은 말고. 너 정말 그러다 후회한다니까.

 

- 됐어. 그얘긴 그만해.

 

- 정인씨가 너 좋아하는거 알잖냐.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정인씨 놓치지 마라.

 

 

 

태연은 더이상 답이 없었다. 태연이 망설이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바랬다.

그럴 녀석이 못된다는걸 알면서도... 한번쯤은 빈말이라도 제 욕심 하나쯤 채워보겠다 말해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