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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L'amant/L'amant

태연정인 단편 - 오늘

 

오늘

 

 

 

Written by Angelique(carna)

 

 

 

 

 

 

"전 괜찮다니까요.. 그런 표정 하지마세요. 제가 어디 죽으러가요?"

 
"유검사님..... "
 
"아후.. 진짜.. 뭐 이런 그지같은 경우가 다있는건지 모르겠네. 정말 !"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고, 표정엔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음에도 제 앞에 서서 벌써 눈물을 글썽이는 동만과..
치미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어후.. 만 연발하는 순범을 번갈아보며..
왠지 더 있다가는 저도 울어버릴것 같아 얼른 걸음을 옮긴다.
 
어쩐일인지 아침부터 내려져있는 태연의 집무실 블라인드는 여전히 올라갈 기미도 보이질 않는다.
 
노크소리에 들려오는 가라앉은 태연의 목소리.
 
"들어와"
 
하필 오늘 비까지 내려서는.. 기분이 정말 엉망이다..
잔뜩 구름낀 하늘덕에 실내가 어두침침한데.. 그는 불도 안켜고 뭘하고 있었던걸까..
 
"불도 안켜고 뭐하세요.. "
 
문 옆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켠다.
오늘따라 형광등 불빛도 흐릿해 보이는건.. 그만큼 정인의 마음이 서글프기 때문일것이다.
 
"등이 오래돼서 그런가..  어둡네.."
 
태연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있다.. 정인을 보고는 있는건지..
 
"민검사님.. 저 가요.. 인사하려구요. 뭐.. 말도 잘 안듣는 골치아픈 부하직원 떠나는거지만 ..
그래도 그동안 쌓인 정이 있는데  너무 기뻐하지는 마세요.... "
 
괜시리 마음에 없는 소리를 또  툭.....   뱉어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저남자 앞에선 마음과는 다른 말만 하게되는건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너무 일만 하지마시고, 연애도 좀 하시고 그러세요. 안녕히계세요 민검사님.. ."
 
정인은 허리를 한껏 숙여 꾸벅 인사를 한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을때.. 정인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에 당황해서 얼른 뒤돌아선다.
뚫어져라 문을 보며, 얼른 나가야지 마음만 먹을뿐 한걸음도 떼지 못한채 떨어지는 제 눈물이 카펫위에 만드는 얼룩을 보고만있다.
 
힘겹게 문을 향해 한걸음 떼었을때...
정인은 어깨에 올려지는 서늘한 감촉에 놀라 우뚝 멈춰선다.
그리고.. 곧 태연에 의해 돌려세워진다. 
 
"조금만 참아.. 어떻게든 다시 데려올테니까."
 
지금 이게 저한테 하는 말이 맞긴 한건지.... 태연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현실성이 떨어지는건지..
정인은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작게 고개만 끄덕인다.
 
"얌전히 기다려. 사고치지말고, 알았어?"
 
"사고는 무슨.. "
 
무안한 마음에 볼멘소리를 하려는데 .. 갑자기 훅 하고 태연의 가슴이 가까워진다.
 
아..눈물 범벅인데.. 셔츠에 얼룩질텐데.. 마스카라 묻으면 어떡하지? 아니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지?
 
머리속이 빙빙 도는것 같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이남자가 정말 그 차가운 민태연이 맞긴 한걸까?
저를 품에 안고 다독여주는 남자가.. 정말 그가 맞는건지 의심스럽다.
 
익숙한 체취가 코끝을 간지른다. 이 사람의 품은 어째서 이렇게 서늘하기까지 한걸까.. 이렇게 차가운데.....
곁에 있을때 보약이라도 한재 해줄걸 그랬나보다.. 
 
생각을 멈추자 그제야 태연의 팔이 저를 안고 있다는걸.. 눈앞에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가슴이 그의 것이란걸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심장이 왜 이렇게 미친듯이 뛰어대는건지.. 내 심장소리에 내가 나가 떨어질것 같다..
그도.. 듣고 있을까?...그도.. 느끼고 있을까?.. 쿵쾅대는 이 마음을?..
 
지방으로 좌천당해 가는 주제에 이렇게 설레도 되는건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정인은 아무래도 정신이 어떻게 된건 아닌가 싶어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 저를 안은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태연이 낮설지만 고마워서
이제 그만 울어야하는데.. 자꾸만 솟아나오는 눈물이 주체가 안된다.
 
"그만울어.. 최대한 빨리 다시 올 수 있도록 해볼테니까, 너무 걱정말고. 내일 아침 일찍 가야할테니까 가서 좀 쉬고. "
 
정인을 품에서 떼어내 그만 울라고, 곧 다시 올수 있을거라고 말하는 태연.
아무래도 정인이 좌천당한게 억울하고 서러워서 우는거라고 생각하나보다.. 그게 아닌데..
 
그런게 아니라구요.. 그쪽이 너무 다정해서.. 갑자기 너무 다정하게 구니까.. 좋기도하고 겁나기도해서 우는건데..
자꾸 엉뚱한 소리만 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이남자 나만큼 연애엔 소질이 없나보다.
 
태연은 정인의 생각을 알고는 있는건지.. 정인의 등을 계속 토닥여주며 밖으로 나온다.
 
"에? 울었어요? 야! 태연아 임마 너.. 또 뭐라고 했길래 유검이 울어? 어?"
 
속도 모르고 태연을 윽박지르는 순범의 모습이 우스워서 정인이 피식 웃어버린다.
 
"그래요, 유검 웃어요. 웃어, 무슨수를 쓰든 얼른 다시 올 수 있게 우리도 여기서 애쓸테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고 씩씩하게 있어요 어?"
 
넙대대한 얼굴을 들이밀며 삼촌같이, 큰오빠같이 저를 다독이는 순범이 고마워 또 울컥 눈물이 나려고한다.
아무래도 오늘 유정인 눈물샘이 고장났나보다..
 
"유검사니임!"
 
갑자기 저를 와락 안는 동만이 때문에 뒤로 넘어갈뻔했다.
 
"똥만, 너 나 없다고 일안하고 뺀질거리고 그러면 안돼. 알았어?"
 
"네.. 유검사님, 밥 잘 챙겨 드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아셨죠?"
 
동그란 눈에 걱정이 가득해서는 제 건강을 챙기는 동만의 머리칼을 후두둑 헝클어놓는다.
 
"걱정마"
 
 
 
 
 
##

 

 

 
시내 구석에 있는 작은 bar... 테이블도 몇개 안되는 작은 술집...
 
아는사람 하나 없는 이곳이 낯설고 외로워서.. 혼자 술한잔 할수 있는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이곳이 정인의 단골 술집이 되어있었다.
 
"오늘 너무 많이 마시는거 아니야?"
 
"괜찮아요. 내일 쉬는데요 뭐~ 얼른 잔이나 채워줘요오~"
 
걱정스레 물어오는 4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어딘지 모르게 순범을 닮은 이 아저씨가 여기 사장이자 바텐더.
일주일이면 두세번 이상 혼자와서 바에 앉아 술을 홀짝이다보니 저도 모르게 친해져버렸다.

정인이 특검팀을 떠나온지 어느덧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렇게 촌티 팍팍 날리는 bar에 앉아 그날의 기억을 더듬다보니..

금방 데려간다던 태연의 말이 떠올라 불쑥 화가 치민다.
아직도 안데려가고 뭐하는거야 싶은게 또 욱 해서는 위스키가 벌써 몇잔째인지 모르겠다.
 
사실 정인이 이 시골구석으로 좌천당한건 그녀의 잘못은 아니였다. 물론 태연의 잘못도 아니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라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테지만.. 책임져줄 사람이 필요했고,
정인이 그 희생양이 되었을뿐..
 
그래도 위에서 책임을 물어 좌천시키는 대상이 태연이 아니고 자신이라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날 그렇게나 다정했던걸까?.. 그저 고마워서?..
 
그렇게 그날을 떠올리자니 또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고 용을쓴다.
 
"에잇! 음악 좀 바꿔봐요, 언제적 노래를 트는거야 진짜아~"
 
정인이 바 안쪽으로 들어가 선반을 뒤적거린다.
 
"유검사 오늘 왜그래? 뭐 안좋은일 있었어?"
 
"좋은일 안좋은일이 어딨어요.. 내 인생에 이제 그런거 없네요~"
 
"떽! 아직 한창인 아가씨 입에서 못하는소리가 없네"
 
정인이 선반을 뒤적거리다 손에 잡히는 CD하나를 꺼낸다.
 
"음악 내맘대로 바꿔도 되죠?"
 
"언제부터 물어보고 바꿨다고 그래? 새삼스럽게"
 
"하하..."
 
멋적은 웃음을 웃고, CD를 바꿔넣는다. 케이스를 뒤집어 원하는 노래가 몇번째에 있는지 확인하고 버튼을 꾹꾹 누른다.
 
음악이 나오고..... 정인이 다시 자리로 가서 술잔을 만지작 거린다.
 
 
 
오랜만이에요
그대 생각 이렇게 붙잡고 있는게
그대 목소리가 생각나는게
오늘따라 괜히 서글퍼지네요
 
술 한잔 했어요
그대 보고싶은 맘에 또 울컥했어요
초라해지는 내가 보기 싫어
내일부턴 뭐든지 할거에요
           .
           .
           .
내 목소리 그립진 않나요?
내가 보고 싶은 적은 없나요?
나만 그런가요?
그대 흔적에 나 치여 살아요
그대 흔적에 나 묻혀 살아요

나는 어떡하죠
나는 어떡하죠
나는 어떡하죠...
 
 

어쩌면 이렇게도 제 마음 같은지..

좌천당한것 따위 마음에 둔적 없는데..
 
그저 너무 오래 보지못한 태연이 ..보고싶고.. 목소리마저 그리워서..
함께했던 때를 떠올리고.. 매일을 그속에 묻혀 지내는데.. 어쩌면 전화 한통 없는걸까..
 
잊고 살아야지.. 안보면 잊혀진다더라 하면서.. 없는 일도 만들어 해가며 도망쳐 봤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한순간도 잊혀지지 않는건지..
 
머리속을 맴돌다.. 가슴을 헤집어놓는 그리움에 오장육부가 온통 타들어갈것 같다.
 
오기가 생겨서 전화도 안했었는데.. 젠장! 정인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온다.
 
정인이 술잔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든다.
번호를 누르고도 신호가 가기전에 끊어버리기를 수십,수백.. 아니 수만번은 한것 같다.
 
단축번호를 길게 누른다.. 그리고 질끈.. 눈을 감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울린다.... 한번..두번.. 세번...
 
몇번이나 울렸을까? 세다가 잊어버렸나보다.. 달칵 소리가 난다. 아, 받은건가?
 
고객이 전화를 받지않아.. 어쩌고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본다.
 
밤 10시 반.. 아직은 그가 잠들 시각이 아닐것 같은데...
 
'날 잊은걸까?.. 이제?..'
 
스피커에선 나는 어떡하냐고 반복해서 물어오더니.. 이내 다른 음악으로 넘어간다..
정인이 술잔에 남은 술을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리움을 털어낸다.
 
"저 가요.. "
 
"택시 안불러줘도 돼? "
 
"괜찮아요. 갈께요"
 
순범을 닮은 바텐더 아저씨랑 몇마디 인사를 주고받는다.
 
문을 열고 나와 고개를 푹 숙이고 좁은 계단을 내려간다.  힘없는 발걸음..
 
그런데 ...이상하다.. 왜 눈물이 나는걸까? 울려던게 아닌데..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면서도 정인은 힘없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이 몸을 덮친다.
 
으스스 떨려오는 몸뚱이에 코트깃을 꼭꼭 여미고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는 정인의 발앞에
깨끗하게 잘 닦인 검정구두가 멈춰선다.
 
'아..기분도 안좋은데 이건 또 뭐야'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드는 정인.
인상쓰고 있는 정인의 얼굴을 본 태연이 저도 따라 눈썹을 찡그린다.
 
"울어?"
 
"...."
 
"인상 쓰지마"
 
제 미간을 향해 쭉 뻗어오는 태연의 손가락을 피해 고개를 뒤로 빼보지만, 어느새 그의 검지손가락이 눈썹과 눈썹 사이를 꾹 누르고 있다.
 
태연의 손가락이 닿았던 자리가 뜨겁다.. 왠지 달아올랐을것 같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는 정인.
 
"여기서.. 뭐하세요..?"
 
"너 데리러 "
 
"네?"
 
태연이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넨다.
 
"이게 뭐에요?"
 
태연은 슬쩍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정인을 보고만 있다..
봉투안에 든 종이를 꺼내본다. 금새 놀란 표정으로 태연을 올려다보는 정인.

"이거.. 정말이에요? 저 다시 특검팀으로 가요?"
 
"거기 써있잖아."
 
정인이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인사발령통지서를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내 환하게 바뀌는 정인의 표정.. 울다가, 인상썼다가, 찡그렸다가.. 이젠 웃고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신나간 여잔줄 알겠다.
 
엉뚱한 생각에 정신을 내어주고 있을때 제 이름을 부르는 그리웠던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린다.
 
"유정인"
 
"네.."
 
"고생했어."
 
"아니에요.. "
 
어깨에 올려지는 서늘한 감촉에 이제야 정말 태연이 곁에 있다는걸 실감한다.
 
"그런데.. 민검사님.. 이걸 왜 직접?.."
 
좀 이상하단 생각에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태연을 올려다본다.

태연은 말없이 잠깐동안 정인의 얼굴을 보더니 정인이 떠나오던 그날처럼 정인을 안아준다.
 
"빨리 보고싶어서"
 
숨이 멎을것 같다. 심장이 바쁘게 뛰기 시작한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나사라도 하나 빠져버린건지.. 머리속이 백지가 되어버린다.
 
태연이 정인을 품에서 살짝 떼어내고 얼굴을 보더니 피식 소리내어 웃는다.
 
"표정 한번 버라이어티하네"
 
"그런데 저 여기있는건 어떻게 아셨어요?"
 
"골치아픈 부하직원 도망갈까봐 감시 좀 붙였거든"
 
"네?"
 
"그런게 있어.."
 
태연은 정인이 어디로 사라질까봐 불안하기라도 한것처럼 다시한번 힘주어 꼭 끌어안는다.
 
"보고싶었다. 유정인.. "

 

 

 

 

 

 

♪ 에피톤 프로젝트의 '오늘'을 듣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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