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수사
Written by Angelique(carna)
"그러니까! 그냥 저 혼자 해도 된다니까요!"
"이미 정해진거니까 말 들어!"
태연의 집무실에서 들려오는 큰소리에 동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범을 본다.
"아.. 거참 또 분위기 살벌해지네.. "
"왜들 저러시는건데요?"
"왜는 왜냐. 그눔의 망할 클럽인지 나이튼지에 잠입수사 하는거 때문에 저러는거지"
동만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지 한참을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다.
순범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동만을 손짓해 부른다.
쪼르르 달려와 앞에 서는 동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집중해서 잘 들으라는듯 눈을 한번 맞추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범.
"그러니까 요번 사건에 사용된 그 신종마약의 출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x클럽인가 뭐신가 이름도 요상 야릇한 거기에 잠입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민검사가 요전에 이미 한번 가서 들쑤셔 놔서 그쪽에서 우리 민검사 얼굴을 알아요. 그러니 다른사람이 잠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이 황순범이는 나이에서 이미 퇴짜를 맞게 생겼고, 그렇다고 잔뜩 겁먹어서 어리버리 할게 빤히 보이는 너 최동만이를 시킬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 결국 우리 유검사가 잠입을 해야하는데~ 아무래도 그게 많이 위험해 보이지 않겠냐 이거다. 아무리 유검사가 주먹다짐에 일가견이 있어도
여자 아니냐. 그 늑대같은 자식들이 우글우글한 소굴에 지가 아끼고 아끼는 유검을 들여보내고 우리 민태연검사께서 마음이 놓이시겠냔 말이지"
여전히 이해불가라는 표정의 동만을 보며 순범이 끌끌 혀를 찬다.
"너는 인마! 그래서 안되는거야. 척! 하면 착! 하고 알아들어야지. 특검팀에서 몇년인데 넌 아직도 그모양이냐?.. 쯔쯧 .. 잘 들어! 그러니 우리 민검은
아무래도 유검 혼자는 위험하니까 누굴 좀 같이 들여보냈으면 하는데, 우리 부서에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마약수사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거지.
근데 우리 유검이 누구냐? 자존심 강한걸로 치면 민검사 저리가라인 우리 유검사께서 다른부서 도움까지 받아가며 얼씨구나 알겠습니다~ 할 사람이냐? 그러니 지금 유검은 혼자하겠다! 민검은 안된다! 저러고 티격태격 벌써 한20분은 저러고 있는거 아니겠냐"
그제야 동만은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황형사님이세요! 그냥 안보고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척척 아시는거 보면요! 그런데 어째 사건해결은 그렇게 못하시나 몰라..."
"뭐?! 야! 최동만이 너 일루와봐! 이 쟈식이 요즘 오냐오냐 해줬더니 그냥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지? 너 오늘 어디 제대로 한번 혼나봐! 일루 안와?!"
순범이 팔을 걷어붙이며 추격전을 벌이려는데 태연의 집무실 문이 홱! 열리며 정인이 나온다.
덕분에 순범은 막 들어올리려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고, 동만은 후다닥 제 자리를 찾아가기 바쁘다.
태연의 집무실을 나온 정인이 다시금 제가 나온 문 뒷편을 보란듯이 흘겨보더니 부러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와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잔뜩 긴장해 있던 순범이 정인이 사무실을 나가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어서 태연의 집무실로 쪼르르 달려간다.
인상을 찡그린채 자리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는 태연의 모습에 순범이 한숨을 내쉰다.
"왜? 유검이 싫대? 다른부서 사람이랑 못하겠대?"
"못하는게 어디있어. 상관이 하라면 하는거지"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뭐씹은 표정인데? 그리고 유검은 왜 저렇게 씩씩거리면서 나가는거고"
"나가?"
순범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아주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한다.
그에 태연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읽고있던 서류철을 탁! 소리나게 덮어버린다.
"태연이 너 설마 유검한테도 나한테 말한것처럼 상관이 하라면 해야지 말이 많다! 뭐 이런식으로 말한건 아니겠지?"
순범의 말에 태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왜 아니겠냐는 얼굴을 하자, 순범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는 인마, 그래서 안된다는거다. 어쩐지 유검이 저 문짝을 아주 부셔버릴듯이 노려본다 했다. 쯔쯧"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얘기를 해"
"에효~~ 내가 진짜 이 나이에 .. 같이 늙어가는 동생눔 연애상담까지 해줘야 하나 싶긴 하다만.. 야 태연아, 니가 다른부서에 지원요청까지 해가면서
유검 혼자 잠입수사 하는걸 막는 이유가 뭐냐?"
"그야.. 위험하잖아. 말이 클럽이지 온갖 범죄자들이 득시글 거리는데..."
순범은 태연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렇지! 위험하지. 근데 태연아 너 유검 걱정하는게 말이다. 정말 부하직원 걱정하는 마음 밖에 없는거냐?"
"그게 무슨 소리야? 상관이 부하직원 걱정하는게 뭐 잘못됐어?"
"아니~ 얘가 얘가... 정말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들어요.. 그러니까 그게 잘못됐다는게 아니라.. 에라 모르겠다. 단도직입적으로다 묻자!
너 정말 유검이 여자로는 안보이냐? 유검이 거 그냥 부하직원으로밖에 안보이냐고! 어차피 여기 너랑 나 둘뿐인데 말 좀 해봐라"
"형! 내 사정 누구보다 잘 아는 형이 그런 소릴 하면 어쩌란거야.."
"어허~ 인마, 니 사정이 뭐 어떤데? 아니 뭐! 딱 까놓고 얘기해서 니가 유검을 여자로 생각하고 뭐 두사람 사이에 썸씽이 생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
너 그렇게 자꾸 답답한 소리만 하는데 나도 지친다. 그런데 하물며 유검은 어떻겠냐?"
"그러다.. 정말 내가 이성을 잃으면.. 그래서 내가 유정인을 해치기라도 하면.."
순범이 제 가슴팍을 퍽퍽 두드린다.
"인마! 어차피 니들 둘이 연애하는 사이가 아니여도 하루에 열몇시간씩 붙어있는게 하루 이틀이냐? 그렇다는건?! 수사때문에 어디 어두침침한데
둘이 갖혀있게됐어! 그런데 갑자기 니 이성이 집을 나갔다치면? 그럼 그건 어떡할건데? 내 말은! 뭐가 다르냐는 거다. 니가 유검에 대한 마음을
인정해도 달라질건 없다는거야. 몇년을 너 하나 바라보면서 가슴앓이하는 여자.. 가엽지도 않냐? 이 매정한 쟈식아! "
"그럼 나보고 뭘 어쩌라는건데 형은.."
"까짓 가서 고백이라도 하라고 하고싶지만.. 니 성격에 그건 무리일테고.. 적어도 그냥 명령이니까 시키는대로 해라 하지말고~ 니가 진심으로 유정인이란 여!자!를 걱정하고 있다~ 뭐 그런거라도 말해주라고 인마. 알아들었냐? 으이구! 이 답답아! 이만큼 했으면 알아서 좀 해라. 뭐하냐? 유검 찾으러 안가?"
순범이 태연을 잡아 일으켜 등을 떠밀며 연신 눈을 찡긋거려가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 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태연의 등짝을 퍽 소리나게 때린다.
"거 좀 쨔식이! 이 형님이 이렇게까지 해주면 못이기는척 그냥 좀 따라주면 오죽 좋냐?! 빨리 안가?"
순범에게 등떠밀려 사무실을 나온 태연이 엘리베이터 앞에 선채 생각에 잠긴다.
순범의 말대로 몇년을 제 뒤에서 바라는것 없이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준 여자다.. 저를 향한 마음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걸 숨겨보겠다고 아둥바둥 하는 모양이 너무 예뻐 어느날은 그냥 그 마음을 받아주고 싶다 생각해본적도 있었다. 제게 무엇을 바라지도.. 그 마음을 받아달라 떼를 쓰지도 않으며.. 몇년을 한결같이 곁에 있어준 정인에게.. 이렇게 모르는척 하는것이 잔인한 짓일지도 모르지만.. 태연은 아직 자신이 없다. 정인을 향한 제 마음을 막아놓은 둑을 허물고 나면.. 잠시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을테고.. 안고 싶을테고... 떼어놓고 싶지 않을텐데.. 정말 정인을 지켜줄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건지.. 아직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생각에 빠져있던 태연은 휴대폰 문자알림음에 생각을 털어낸다.
'동만이가 전화해봤더니 옥상에 있단다 유검. 너 엘리베이터 앞에서 멍때리라고 등떠밀어 내보낸거 아니니까 얼른 올라가서 유검 데리고 내려와라.
화이팅이다 민태연!'
순범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태연이 휴대폰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피식 웃는다.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태연이 크게 심호흡을 한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앞에 선 태연이 다시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손잡이를 돌린다.
저만치 보이는 정인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게 느껴진다.
바람도 찬데.. 대체 언제부터 여기 올라와 있는건지.. 저러다 감기라도 들까 걱정스럽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태연이 한두발짝 뒤에 섰는데도 알지못한채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유정인"
익숙한 목소리에 정인이 뒤돌아본다.
"오셨어요... "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사람이 바로 뒤까지 와도 몰라?"
"생각은요.. 그냥.. 그냥요.."
아까 사무실을 나간 뒤로 계속 이곳에 있었는지 정인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다.
태연이 재킷을 벗어 정인의 어깨에 둘러주며 제게로 정인을 돌려세운다.
"어?.. 괜찮은데.. 안추워요.."
"너 입술이 파래. 될법한 거짓말을 해"
정인이 제 입술을 손으로 문지르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태연이 그런 정인을 품으로 당겨 안고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유정인.. 정인아.. 널 못믿어서가 아니야. 걱정되니까.. 부하직원 유정인이 아니고, 정인이 니가.. 유정인이라는 여자가 걱정돼서 그러는거니까.. "
동그랗게 커진눈을 껌뻑이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던 정인이 '유정인이라는 여자가 걱정된다'는 말에 태연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지만,
태연은 그런 정인을 더 꽉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제발 말 좀 들어라, 유정인. 내가 좋아하는 여자 그런 위험한 곳에 잠입 시키는 내 마음도 좀 헤아려주라. 나 지금 굉장히 어색하고 민망하니까.
빨리 대답해"
정인이 풉~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태연이 품에 꼭 안고 있던 정인을 조금 떼어내고 웃고있는 정인을 내려다본다.
"웃어? 난 지금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데 웃는단말이지?"
"쿡.. 아,아뇨. 안웃어요. 말 들을게요. 그러니까 진즉에 걱정돼서 그런다.. 한마디 하셨음 좋을걸.. "
"꼭 이렇게 대놓고 자세히 설명을 해야 알아듣지 유정인검사님."
"아..뭐.. 그야.. 저도 좀 변하고 싶은데.. "
금새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린 정인의 모습에 태연이 피식 웃으며 다시 정인을 품에 안는다.
"그런 여자라 좋은거니까.. 변하지 마. 나같이 미련한놈 .. 떠나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정인아.."
태연이 붉게 상기된 정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태연은 생각한다... 아직은 이대로 행복하고 싶다고......
아마 한동안 태연은 정인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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