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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L'amant/L'amant

태연정인 단편 - 바다가 좋아! (여름3)

바다가 좋아! (여름3)

 

 

                        

                       Written by Angelique(carna)

 

 

 

 

 

 

밀려드는 사건 덕분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보내던 특검팀.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와있는데도 아직 휴가도 가지 못한 네사람이다.

 

"아.. 바다 보고싶다아~ .. "

 

정인이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한숨처럼 말한다.

 

"그쵸? 여름엔 뭐니뭐니 해도 역시 바다가 좋아요 그쵸?"

 

동만이 거들고..

 

"크.. 바닷바람 맞으면서 바베큐파티에 쐬주 한잔.. 캬~"

 

순범까지 가세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도저히 안되겠다는듯 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왜,왜요? 유검 어디가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왕 말 나온 김에! 가자구요 바다! 까짓 두번 살것도 아닌 인생 이렇게

탁한 도심에서 여름을 보내는건 좀 억울하잖아요? 주말에 1박2일로 동해여행! 어때요?"

 

"오오~ 좋아요 좋아! 역시 유검사님 짱!"

 

동만이 엄지를 들어올리며 정인을 추켜세운다.

 

"근데, 유검 애인은? 저 녀석이 가려고 할까? 것도 넷이 같이?"

 

순범의 걱정에 정인이 제 가슴팍을 탁탁 두드리며 저만 믿으라더니 쪼르르 태연의 집무실로 들어간다.

 

이젠 명실상부 연인사이인 태연과 정인 사이에 끼고싶지 않은 순범이였지만, 이럴때가 아니면 일에 파묻혀

바다 아니라 근처 수영장도 한번 못가보고 여름을 날것 같아 못이기는척 고개를 끄덕인다.


 

 

 

집무실 문이 홱 열리는 바람에 책상위에 박혀있던 태연의 시선이 들린다.

 

"이제 유정인까지 노크 안하기로 한건가?"

 

정인이 '아!' 하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태연이 피식 웃으며 '왜?' 하고 묻자 정인이 쪼르르 잰걸음으로 태연의 곁에 와서 선다.

 

이내 태연의 팔을 잡으며 '민검사니임~' 하고 애교섞인 목소리를 내는 정인.

태연이 이거 왜 이러냔 표정으로 정인을 올려다본다.

 

"무슨일이야? 왜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러는데? 무슨 사고쳤어?"

 

정인이 붙들고 있던 태연의 팔을 팽개치듯 놓아버리고 입술을 삐죽인다.

 

"이쒸! 애인이 모처럼 애교를 좀 피우고 그러면 받아주기도 하고 그래야지, 사고쳤냐니! 제가 민검사님 딸이에요?!"

 

잔뜩 볼멘소리를 하고는 홱 돌아서 단단히 토라진 티를 내고 있다.

 

태연이 소리내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정인을 제게로 돌려세운다.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마 내가 잘못했으니까. 응? 애인- 이렇게 나좀 봐봐"

 

태연에게 돌려세워지고도 고개를 돌린채 애꿎은 바닥만 노려보고 있는 정인의 턱을 잡아 눈을 맞추는 태연.

 

"잘못했다니까.. 좀 봐줘라. 응?"

 

태연이 집무실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는지 다시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정인의 입술에 촉- 소리나게 키스를 한다.

 

이렇게나 달콤한 키스에는 정인도 더는 화를 낼 수 없었던지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잡아내리며

 '그러게 첨부터 좀 이러시지' 한다.

 

정인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이며 '그런데 무슨일이야?' 하고 묻자 정인이 태연의 허리에 팔을 감은채 고개를 젖힌다.

 

"우리~ 바다보러 가요. 주말에.  네?"

 

"그럴까? 어디로?"

 

"동해요! 강릉도 좋고, 속초도 좋고요~ "

 

"그런데.. 당일치기로 가기엔 너무 멀잖아? 바다만 보고 바로 올거야?"

 

"응? 왜요? 1박2일로 가야죠~"

 

태연이 조금 놀란듯한 표정으로 정인을 내려다본다.

 

"이 아가씨가.. 나도 남자거든? 내가 갑자기 늑대로 돌변하면 어쩌려고?"

 

정인이 까르르 웃는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숨이 넘어갈듯 웃던 정인이 살포시 눈을 흘긴다.

 

"에이~ 민검사님 늑대! 단둘이 말고, 우리팀 다 같이요~ 넷이 가자구요"

 

정인의 말에 머쓱하기도 하고 아쉽기도한 태연. 저를 놀려먹었다며 정인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콩 쥐어박는다.

 

"여름이고 휴가철인데 주말에 숙소나 잡을 수 있겠어?"

 

"어? 그럼 숙소만 잡으면 가는거죠? 응? 그쵸? 빨리 대답해요 빨리~"

 

정인이 태연의 팔을 잡고 매달리듯 하고선 어서 빨리 대답하라고 졸라댄다.

그 모습이 귀여워 태연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꺄~ 하고 소리까지 지르며 좋아한다.

 

"약속하신거에요? 응응? 약속약속"

 

약속이라며 새끼손가락을 걸어오는 정인의 모습에 태연이 결국 행복한 웃음을 터뜨린다.

 

 

 

***

 

 

 

어찌어찌 숙소를 잡은 덕에 특검팀은 실로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생각인지 태연이 고집을 피워 동만과 순범, 태연과 정인. 이렇게 둘로 나누어 따로 이동하기로 한다.

동만과 순범을 앞세워 출발시키고, 태연의 빨간 머스탱에 오른 정인이 다같이 가면 될걸 뭐하러 따로 가냐고 타박을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단둘이 있을 시간을 벌텐데, 그럼 어떻게 해. 안그래도 도착하면 황형이랑 동만이가 뺏어갈게 뻔한데.

안그렇습니까? 애인?"

 

말끝마다 애인애인 하는게 싫진 않지만, 그렇게나 단단한 벽같기만 하던 남자가 이렇게나 달콤하게 구는게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 살짝 민망한 정인이다.

 

"알았어요.. 뭐.. 알았다구요. 자꾸 말끝마다 애인- 이러시는거 저 놀리시는거죠"

 

태연이 절대 아니라며 크게 도리질을 친다. 그럼에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어쩔 수 없나보다.

수줍음에 발갛게 상기된 정인의 볼을 보니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걸 애써 참는다.

 

"도착하려면 한참 걸릴텐데 그동안 눈 좀 붙이던가. 피곤하지 않아?"

 

"아뇨~ 하나도 안피곤해요. 민검사님이랑 떠나는 첫 여행인걸요~"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라는 말이 싫지 않아 태연의 얼굴에도 얼핏 웃음이 어린다.

 

"서울 벗어나면 깨워줄테니까 그 사이라도 좀 쉬도록해"

 

한껏 기분이 좋아진 태연이지만 겉으로 드러냈다간 정인이 한참 놀려먹을것 같아 애써 꾹꾹 눌러 담는다.

 

"민검사님이야 말로.. 피곤하실텐데 어떡해요? 운전.. 교대로 할까요? "

 

"괜찮아. 그렇게 걱정되면 차비라도 미리 주던가"

 

무슨말인지 몰라 동그란 눈을 꿈뻑이는 정인의 모습에 태연이 피식 웃으며 오른손 검지를 들어 제 볼을 가리킨다.

 

정인이 살짝 수줍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태연의 볼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정인의 입술이 못내 아쉬운 태연이 '한번 더' 하자, 정인이 살짝 눈을 흘기며

'으응? 차비가 좀 비싼거 아니에요?' 한다.

 

태연이 울상을 짓는 시늉을 하자 정인이 까르르 웃고는 다시 태연의 볼에 입술을 가져가고, 태연은 정인의 입술이

볼에 닿기 전에 얼굴을 돌려 입술에 입맞춤을 받는다.

 

정인이 수줍게 웃으며 '앞에 보세요~ 앞!' 한다.

 

파도소리같은 태연의 웃음소리에 정인도 따라 웃는다.

 

 

 

 

**

 

 

복잡한 주말의 고속도로를 달려, 오후가 되서야 숙소에 도착한 태연과 정인.

 

동만이 알려준 호텔이 맞는것 같은데.. 순범과 동만은 보이질 않는다.

먼저 출발한 두사람이 아직 안왔을리가 없는데, 의아한 생각에 정인이 동만에게 전화를 건다.

 

"똥만. 어? 황형사님? 이거 동만이 전환데.. 왜 황형사님이 받으세요?"

 

순범이라는 말에 태연이 정인에게서 전화기를 받아든다.

 

"형. 어디야? 우리 도착했는데 어딨는거야? 왜 안보여?"

 

잠깐 저쪽의 이야기를 듣던 태연이 '뭐?!' 하고 소리를 지르고, 정인이 그 소리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태연을 올려다본다.

 

"형! 아니, 그게 무슨.. 거긴 어디쯤인데? 나도 그리..  뭐? ....  후-  알았어. 알았다구.  믿을께 믿어..."

 

전화를 끊은 태연이 다시한번 크게 한숨을 내쉰다.

 

"왜요? 무슨일인데요? 두사람 무슨일 있데요? 사고? 사고 났대요?! 그래요?!"

 

잔뜩 걱정스런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던 정인이 나쁜 생각이 들었는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고 난거냐고 묻는다.

 

"아냐, 그런거.. "

 

"그럼요? 뭔데요? 민검사님"

 

"그게.. "

 

말을 꺼내려다 다시 또 '아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정인이 궁굼함과 걱정으로 태연의 팔을 잡아 흔들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 주말이고 휴가철이라.. 숙소가 마땅치 않았나봐.. 그 둘은 저 아래 민박에서 잔대.. "

 

"아.. 그런거구나.. 뭐에요? 놀랬잖아요. 그게 뭐 대단한거라고.. 민검사님은"

 

정인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인아.. 그게.. "

 

"왜요? .."

 

"여기 호텔예약을.. 말야.. "

 

여전히 눈만 깜빡이며 저를 올려다보는 정인의 얼굴을 보자 태연은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정인이 대답을 재촉하듯 다시한번 태연의 팔을 잡아 흔든다.

 

"남은 룸이 하나뿐이었데.. 그런데 저쪽 민박도 방 하나고, 좁다고.. 어딘지 말도 안해줘서 말이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정인의 눈이 커진다.

 

"아, 물론 정인이 네가 너무 불편하면 난 차에서...."

 

정인이 태연의 말을 막는다.

 

"무슨 그런말을 하세요. 어떻게 차에서, 것도 우리 타고온 차에선 민검사님 다리도 다 못 뻗을걸요?

저 그렇게 무심한 애인도 아니구요!! .. 어서 들어가요. 저 피곤해요"

 

아무렇지 않은척, 쿨한척 말은 했지만 정인은 태연과 같은 방에서 단둘이 밤을 지내야 할 생각에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들다.


 

 

**

 

 

방 한가운데 놓인 킹사이즈 침대를 보자 괜히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정인은 얼른 창가로 간다.

 

"와~ 여기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요. 예쁘다.."

 

왜 그런지 아무말 없는 태연을 돌아보기가 겁이나서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정인은 오늘 제가 무슨 속옷을 입고왔던가를 떠올리곤 울상이된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신경써서 챙겨오는건데..'

 

태연도 뻘쭘하고 무안하기는 매한가지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황형은 정말 괜한짓을 한다. 뭐.. 일부러 그런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식으로 정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자 괜히 부아가 치민다.

 

테라스에 나가있는 정인의 뒷모습...

지금쯤 아마 온갖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을 정인을 생각하니 걱정스러움 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온다.

 

또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고 있겠지 싶어 태연이 테라스로 나간다.

바다에 매료된듯 눈을 떼지 못하는 정인을 뒤에서 살며시 안아본다.

 

"배고프지 않아?"

 

정인이 고개를 젓는다.

 

"바다 보니까 좋아?"

 

고개를 끄덕이나 싶더니 제 팔 안에서 빙글 돌아 저를 올려다본다.

정인이 태연의 허리를 감으며 품에 얼굴을 부빈다.

 

"민검사님- 고마워요. 같이 와줘서"

 

그 잠깐 사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나 많이 한건지.. 정인의 음성이 어떤 결심이라도 한듯 한결 차분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태연이 정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유정인.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지만...니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러니까, 무엇이든 걱정하느라

속으로 끙끙 앓거나 하지마. 알았어? "

 

품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정인을 조금 더 힘주어 안는다.

 

 

 

**

 

 

정인에게 씻으라고 말하고 방을 나가는 태연. 정인이 어디가냐 묻는다.

 

"편하게 해. 다 씻고 나오면 전화하고 "

 

저를 배려해주는 태연이 고마워 눈물이 왈칵 차오른다. 우는 얼굴 보이기 싫어서 얼른 고개를 숙이고 '알았어요' 하고 대답한다.

 

태연이 문을 열기 전에 얼른 큰소리로 '고마워요 민검사님' 하자 태연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반대로 태연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엔 정인이 로비에 내려와 제가 좋아하는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동만에게 전활 걸어 뭐하러 이런식으로 일을 복잡하게 처리하냐고 한소리 하는것도 잊지 않는다.

잔뜩 잔소릴 퍼붓고 내일 어디서 만날건지 뭘 할건지 수다를 떠는데 태연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딸랑 '올라와' 라는 세글자 뿐인 문자를 보고 정인이 풉 하고 웃는다.

 

서둘러 동만과의 통화를 끝내고, 태연이 가끔 마시는, 샷이 추가된 아이스커피를 사들고 방으로 올라간다.

 

 

 

 

***

 

 

결국 두렵기도 설레기도 한 밤은 찾아왔고..

테라스에 선채 서울에선 하나도 보이지 않는 별이 여긴 잔뜩이라며 신기해 하는것도 밤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태연의 눈치를 살피며 들어와 침대 끄트머리에 앉는다.

 

태연은 그런 정인의 반응이 귀여운 생각에 자꾸만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지만

그녀의 앞에서 만큼은 짐짓 진중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태연이 옷장 안에서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까는걸 보던 정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하세요?.."

 

"아.. 난 아래서 잘테니까, 편하게 자"

 

정인이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태연은 깔아놓은 담요위에 눕는다.

 

정인은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한 제 마음에, 대체 무엇이 진심인지 몰라 눈동자만 또르르 굴린다.

결국 그대로 이불속으로 몸을 묻어버린다.

 

태연이 리모컨을 들어 불을 끄자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맑은 달빛이 방안을 채운다.

 

어둠속에서 이불을 턱끝까지 끌어올린채 눈을 깜빡이던 정인이 무언가 결심한듯 이불을 걷어내고, 벌떡 일어나 앉는다.

 

"주무세요?.."

 

"아니.. 왜? 뭐 필요한거 있어?"

 

"아뇨..., 네.. "

 

아니라더니, 금새 말을 바꾸는 정인. 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정인은 태연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지만, 뱀파이어인 태연의 눈엔 어둠속이라도 정인의 표정이 그대로 다 드러나보인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어찌할줄 모르는 정인이 예뻐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필요한게 있다는거야, 없다는거야?"

 

"이,있어요."

 

"뭔데?"

 

또다시 말문이 막힌 정인. 대체 뭐가 필요하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나 싶던 순간 정인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들려온다.

 

"미,민검사님이요.."

 

'뭐?' 하고 되묻는 태연에게 '이리 오세요. 이 침대 엄청 넓어요..' 한다.

 

태연은 결국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웃어버린다.

 

"정말.. 넓은데.. 진짜에요.. 와서 누워보세요... 바닥 불편하잖아요.. "

 

만일 이대로 제가 고집을 피워 바닥에서 잔다고 하면 분명 정인은 밤새 제대로 잠도 못잘게 뻔했다.

태연은 애써 정인을 위한것이라 자신을 다독이며 정인의 곁으로 가서 눕는다.

 

쭈뼛거리던 정인이 눕자 태연이 정인의 머리위로 팔을 뻗는다.

 

'팔베개 해줄께' 하는 태연의 말에 정인이 얼른 머리를 든다.

 

곧 품안으로 파고드는 정인. 품안에 안긴 정인의 등을 쓸어주며 태연이 웃는다.

 

"날 어떻게 믿고?"

 

"제가 싫어하는일은 안하신다면서요. 거짓말이었어요?"

 

태연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진심이야. 닳아 없어질까봐 보는것도 아까운데 싫어하는 일을 어떻게 하겠어?"

 

부드럽고 달콤한 말.. 설령 거짓일지라도 행복에 빠지게 하는 태연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정인의 귀를 간지른다.

 

"그거 엄청 닭살 돋는 멘트인거 아세요? 근데 왜 민검사님이 하면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웃음기 묻어나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더니 작게 하품을 한다.

 

"어서 자. 자장가라도 불러줘? "

 

자장가라는 말에 정인이 쿡쿡 거리며 웃는다.

 

'불러줘요 자장가' 하는 소리에 태연이 얼른 잘못했다며 한번만 봐달라고 너스레를 떨자 정인은

또다시 까르르 넘어가게 웃는다.

 

"이제 정말 그만 자."

 

등을 토닥이며 말하자, 정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또다시 하품을 한다.

 

 

 

**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눈을 뜬 정인이 제가 안겨있는 품이 누구의 것인지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잘 잤어?' 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는 태연의 손.. 정인이 부끄러움에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한다.

 

아마도 밤새 제 머리를 받히고 있었을 태연의 팔이 걱정되어 '설마 밤새 이러고 계셨던거에요?' 하고 묻는데

태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일어나 앉으며 태연의 팔을 주무른다.

 

"뭐하러 밤새.. 팔 저리지 않아요? 아무때고 틈 봐서 빼시지 뭐하러 .. 암튼 융통성 제로에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융통성 운운하며 열심히 제 팔을 주무르는 정인의 모습에 태연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런 정인을 바라보고 있다.

 

"팔 안저려. 우리 애인이 깃털처럼 가벼운 여자라 괜찮습니다."

 

장난스레 말하며 그만하라고 팔을 주무르는 정인의 손을 거둬낸다.

 

"씻어. 황형이랑 동만이 만나서 밥 먹으러 가자."

 

정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서 나와 욕실로 들어간다. 곧 정인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빼꼼 내밀고 '그냥 계셔도 돼요' 한다.

태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걸 보고야 욕실 문을 닫는다.

 

 

 

 

 

**

 

 

순범과 동만을 만난 둘은..

 

태연은 순범에게 정인은 동만에게 잔뜩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아침식사를 한다.

순범은 정인이 화장실 간사이 뜨거운 밤 운운 하다 결국 태연에게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네 사람은 해변으로 향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바닷물에 몸이라도 적셔야 하는거 아니냐며 잔뜩 들떠있는 순범과 동만.

 

정인은 정작 바닷가로 나오니 쭉쭉빵빵한 여인네들이 아슬아슬한 비키니만 걸치고 활보하는 통에 태연의 시선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다.

 

물론 정인이 애써 태연의 시선을 단속하지 않아도 태연에겐 정인밖에 보이지 않을테지만..

모델 뺨치게 늘씬늘씬한 여자들과 제 몸을 번갈아 보던 정인은 괜한 자격지심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갈 지경이다.

 

바닷가에 파라솔을 빌리고 동만의 손에 이끌려 수영복을 갈아입으러 가면서도 혹시나 태연이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는건 아닌지

발을 동동 구르는 정인.

 

"아, 진짜 유검사님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

 

동만이 정인의 팔을 찰싹 때리며 말하자 정인이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눈을 흘긴다.

 

"아니, 민검사님이 애인인 유검사님을 두고 다른여자들한테 눈길이나 주고 그럴 분이 아니라는거. 다~ 아시면서 그러시네 정말.

얼른 탈의실 가서 수영복이나 갈아입고 오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신나게 물장구는 치고 가야죠 안그래요? 어서요 어서~"

 

오늘따라 맞는말만 골라하는 기특한 동만에게 등이 떠밀려 탈의실 안으로 들어간 정인은 안에 들어와서도 한참 고민이다.

 

태연과 같이 휴가라도 가게되면 입을 수 있을까 싶어 사두었던 스트라이프 무늬의 홀터넥 비키니를 손에 들고 망설이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입고보자 라는 생각에 입긴 했는데... 달랑 끈으로 묶어놓은 홀터넥이 풀리진 않을까,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손바닥만한 비키니 하의가 영 마음에 걸리는 정인.

 

결국 가방안에서 하얀색 니트소재 레이스 원피스를 꺼내 위에 걸친다. 비키니를 사면서 부끄러운 마음에 함께 구입한건데..

원피스라고는 하지만.. 엉덩이를 간신히 덮는 길이인데다, 구멍이 숭숭 뚤린 레이스가.. 뭘 가려주긴 하는건지 모르겠다.

 

거울앞에 서서 요리조리 제 모습을 비춰보고 있는 정인.

 

아무래도 너무 노출이 심한건 아닌가 싶어 옷을 갈아입을까 어쩔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누군가 탈의실 안으로 들어오며 '유검사님~ 유검사님이 어느분이세요?' 한다.

 

정인이 손을 들어보이며 '저,전데요?..' 하자 여자가 웃으며 말한다.

 

"밖에 있는 남자분이 얼른 나오시라는데요? 해 다 지겠다면서요"

 

민망함에 어색하게 웃으며 잰걸음으로 탈의실을 빠져나와 반바지에 나시차림으로 입구에서 기다리는 동만의 등짝을 후려친다.

 

'아! 아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던 동만이 뭐라 대들려다 정인의 모습을 보고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왜? 왜그래? 이상해? 못봐주겠어? 어? 그런거야?"

 

정인이 애가 타게 묻는데도 동만은 자꾸만 쭈뼛거리며 정인을 똑바로 보지도 못한다.

 

"아, 아뇨.. 이뻐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이쁘다고 말하는 동만의 얼굴이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있다.

그 모습에 왠지 저도 무안해져서 동만의 등짝을 다시한번 짝! 소리나게 때린다.

 

"쨔식이! 이쁜건 알아가지구. 빨리 가자"

 

동만의 팔을 잡아 끌며 태연과 순범이 있는 자리로 돌아온다.

 

저만치서 벌써 순범이 정인을 발견하고는 팔꿈치로 태연을 툭툭 건드린다.

 

"왜그래?"

 

"야, 야.. 우리 유검.. 이제 보니 그냥.. 아우~ 넌 좋겠다 태연아"

 

순범의 시선을 따라 동만의 팔을 잡아 끌며 이쪽으로 오고 있는 정인을 본다.

 

블루스트라이프 비키니위로 하얀 레이스에 감싸인 정인의 모습이.. 묘하게 더 선정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

태연이 얼른 일어서 순범의 시야를 가린다.

 

"형! 지금 누굴보고 침흘리는거야?"

 

"어? 어..어? 야 인마~ 너는 침은 누가 침을 흘렸다고.. 흠흠"

 

태연이 얼른 정인에게로 다가간다. 동만의 팔을 잡은 정인의 손목을 휙 낚아채더니 제가 걸치고 있는 셔츠를 벗어 정인에게 입힌다.

'어?' 하는 정인의 벙찐 표정에도 태연은 셔츠의 단추를 꼼꼼히 잠그고 있다.

 

정인이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또 그만큼 기죽은 목소리를 낸다.

 

"보기싫어요?.. 글쵸?..아무래도 제가 쭉쭉빵빵.. 그런건 아니니까.. 비키니는.. 좀 .. 그런가?"

 

그게 아닌데, 제가 너무 예뻐서 뭇 남자들의 시선이 저에게 꽂히는게 싫은것 뿐인데 또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정인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후.. 정말 유정인 눈치없는건 알아줘야지.. 아까워서 나도 제대로 못보는 내 애인이라 꼭꼭 감추는거야. 됐어?"

 

정인은 그제야 '치이.. 부끄럽게..' 하며 베시시 웃는다.

 

꼭 이렇게 대놓고 얘길해줘야 알아들으니 .. 후... 앞으로도 갈길이 멀구나 싶어 한숨이 나온다.

 

결국 정인은 태연의 고집에 따라 반드시 태연과 함께일 때만 움직일 수 있었고, 더위에 땀띠가 나게 생겼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태연이 입혀준 셔츠를 절대 벗지 않았다.

 

그로인해 동만과 순범은 아쉬움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 마저도 태연의 매서운 시선에 묻혀버린다

 

 

 

 

***

 

 

돌아오는 차안

이번 여름엔 기어이 휴가를 가야겠다며 어디가 좋겠냐고 묻는 정인에게 태연이 대답한다.

 

"사람 없는곳. 무인도 정도면 좋겠네. 다른 놈들이 내 애인 몸매 감상하는건 절대 못참겠거든"

 

눈치없는 정인을 위해 태연은 이젠 대놓고 닭살멘트를 날린다.

그런 태연에게 아직 적응이 안되는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인은 행복함에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는다.

 

태연의 볼에 입을 맞추는 정인.

 

"이건 올라가는 차비! 그리고 이건.. 날 예뻐해줘서 고맙다는 인사.."

 

입술에 닿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

 

태연은 아무래도 휴가날짜를 당겨야겠다고 생각한다....

 

 

 

 

한편.. 동만이 운전하는 차안에서 순범은 연신 싱글거리고 있다.

 

"야, 동만아 아무래도 우리가 잘 한거 같지? 그러치?"

 

"그럼요! 당근! 두말하면 입아프죠! "

 

사실 숙소 예약할때 호텔에 방이 하나뿐이었다는건 새하얀 거.짓.말!

이렇게 순범과 동만 사이엔 두사람만의 비밀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