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안부
Written by Angelique(carna)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좋은사람과 약속이라도 있는지.. 동만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건네고 바쁜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간다.
"저저, 저 자식은 인턴주제에 아주 칼퇴근이구만?"
다람쥐마냥 뽀르르 나서는 동만의 뒷통수엔 어김없이 순범의 타박이 따라가고..
그 모습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정인이 너무 그러지 말라며 순범에게 한마디 던진다.
"황형사님도 이제 숙자씨 잊고 다른 좋은 사람 만나서 주말에 데이트도 좀 하고 그러세요. 괜히 데이트 있는 동만이 부러워하지 마시고"
"어? 유검! 그건 아니지. 내가 저 꼬맹이 녀석을 부러워하다니?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나는 그냥 우리팀 제일 막내인 녀석이 주말이면
꽁무니가 빠지게 먼저 달려나가니까~ "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부러운거잖아요. 여자친구 만나러 꽁무니 빠지게 달려가는 동만이가"
순범을 놀리는게 재밌는지 정인이 까르륵 웃는다.
"유검! 진짜 계속 그럴거에요? 어?"
"형은 퇴근 안하고 왜 거기서 씩씩대고 있어?"
등뒤에서 들리는 태연의 목소리에 순범이 돌아서며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어린애마냥 '야, 태연아 유검이 말이다 나한테~ ' 하고 말을 꺼내는데
태연은 듣지도 않고 순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형! 퇴근이나 해' 한다.
"허! 아주 그냥 내편은 하나도 없어요."
순범이 서운한듯 말하자, 정인이 얼른 일어서 그의 팔을 잡고 흔든다.
"에이~ 황형사님 왜 그러세요? 그냥 황형사님도 얼른 좋은사람 만났으면~ 해서 그러는거죠"
정인의 애교스러운 말에 또 금새 풀어져 허허거리는 순범이다.
그런 순범도 곧 퇴근길에 오르고, 정인도 퇴근준비를 서두른다.
"집으로 갈거야?"
갑작스런 태연의 질문에 정인이 놀란듯 동그래진 눈으로 '네?' 하고 되묻는다.
"집으로 바로 갈거면 태워줄게"
엔진소리가 좀 이상한듯 해서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정인은 이틀째 버스를 타고 다니는 참이다.
아마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어제도 말도 안되는 핑계를 만들어 태워다 주더니....
그래서 순범을 먼저 퇴근시키지 못해 안달을 했나보다 싶은게 정인은 피식 웃음이 난다.
"왜 웃어?"
"아뇨.. 그냥.. 근데 저 오늘은 집으로 바로 안가는데.."
집으로 안간다는 정인의 대답에 태연의 표정이 조금 굳어지는듯 하다.
"그럼?"
"네?"
"집으로 안가면 어디 가냐고"
"아.. 이거.. 전해주러요.."
정인이 내미는건 이번 사건 피해자의 가방에 있던 물건이다.
족히 수십통은 넘어보이는 편지들과... 반지...
:
피해자의 이름 김민수.
그에게는 몇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집이 무척 가난했던 남자는 어머니가 암으로 몸져 누우시게 되자 결혼자금으로 열심히 모았던 돈을 어머니
병원비로 모두 써야했고 여자친구에게 미안했던 나머지 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다른사람이 생겼다는 거짓말로 그녀와 헤어졌고.. 자신의 결혼자금을
모두 쏟아부었음에도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사이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들을 썼고.. 3년만에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재회하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청혼하기 위해 3년동안 그녀에게 쓴 편지들을 챙기고, 반지를 준비한다.
낮에는 물류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술집 웨이터로 일하던 남자는.. 날이 아직 밝기전인 새벽시간
웨이터 일을 마치고 편지와 반지를 챙겨 여자친구에게 가기위해 나오던 중.. 살해당했다.
범인은 마약에 취해 환각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착하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한 여자를 너무나 깊이 사랑했던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
"약속했거든요. 수사 모두 끝나면..돌려주겠다구요. 이 편지들.. 그리고 이 반지.. 김민수씨가 주려고 했던 사람에게 줘야 할것 같아서요.."
마치 자기일인듯 잔뜩 슬픈 표정으로 편지와 반지케이스를 들여다보는 정인...
"같이 가지. 전해주고 집에 데려다줄테니까"
마음과는 다르게 무뚝뚝한 말투로 던지듯 말하고 먼저 돌아서 사무실을 나가는 태연의 뒤로 정인이 멀뚱이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픽 하고 웃어버린다.
'아마 저 쯤에서 돌아보며 안와? 하고 묻겠지?'
정인은 속으로 하나 두울 세엣 하고 센다.
정인이 막 셋을 셌을때 태연은 사무실 문앞에서 돌아보며 '안와?' 하고 묻는다.
"갑니다! 가야죠 "
정인이 웃으며 쪼르르 달려 태연의 곁에 선다.
:
:
편지와 반지를 그녀에게 전해주고 나온 정인의 눈가가 빨갛게 부어있다.
차에 기대어 정인을 기다리고 있던 태연은 저만치 눈물을 훔치며 걸어오는 정인의 모습에 그녀가 왜 울었는지를 알면서도 심장이 내려앉는것 같았다.
정인이 차에 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꾸벅 인사를 잊지않고 차에 오르는 정인의 모습을 확인한 태연이 운전석에 오른다.
아직도 눈물이 잘 멈추지 않는지 연신 손으로 눈가를 쓸고 있는 정인의 앞으로 몸을 굽혀 글로브박스에서 물티슈를 꺼내 두장을 뽑아 정인에게 건넨다.
"고맙습니다"
태연의 친절이 정인의 감정을 더욱 자극해버린 걸까?
내도록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흑.. 죄송해요"
태연은 조용히 정인의 어깨에 팔을 둘러 어깨를 다독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괜찮으니까, 참지마"
꾸역꾸역 울음을 목구멍 안으로 삼키던 정인이 참지말라는 태연의 한마디에 소리내어 울어버린다.
:
:
생각 같아선 저녁이라도 먹여서 들여보내고 싶지만.. 울어서 빨갛게 부어버린 눈으로는 어디든 가고싶어 하지 않을것 같아 말도 꺼내지 못한다.
이래저래 정인의 눈치를 살피며 운전을 하던 태연은 어느새 지쳐 잠들어버린 정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다.
행여 정인이 깨기라도 할까, 태연은 운전도 평소보다 조심스럽다.
덕분에 1시간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30분이나 오버해버렸지만 말이다.
정인의 집 근처 태연은 조심스럽게 차를 세우고, 그보다 더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어딘가로 간다.
잠시후 태연이 돌아왔을때 까지도 정인은 잠들어 있었다.
정인의 집 앞..
태연은 잠든 정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대로 반짝 들어다 제 집에 데려다 눕히고 싶은 생각도 들만큼 정인의 잠든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깨워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태연이 조심스럽게 라디오를 켠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시간인 만큼 나른한듯 부드러운 DJ의 목소리가 어느 책의 구절을 읽어내려간다.
그 목소리에 정인이 눈을 뜬다. 몇번인가 눈을 깜빡이며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낸 정인이
시트에 깊숙히 기대어진 몸을 일으킨다. 그와 동시에 스르륵 태연의 재킷이 무릎위로 떨어진다.
잠든 제게 재킷을 벗어 조심스레 덮어주었을 태연의 모습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제가 잠들었나봐요.. 지금 몇시에요? 어머! 벌써 시간이.. 언제 도착한거에요? 깨우지 그러셨어요.."
어쩔줄 몰라하는 정인의 모습에 태연이 피식 웃는다.
"길이 좀 막혔어.."
물론, 거짓말이다.
"괜히 저때문에.. 죄송해요."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좁은 차안의 공기가 갑자기 뜨거워진것 같다.
무릎위 태연의 재킷을 끌어올려 구겨지진 않았는지 살피며 차에서 내릴 준비를 서두르던 정인의 손짓이 멈춘다.
"앗! 이노래.. 저 이노래만 듣고 내릴게요. 그래도.. 되죠?"
참 뜬금없는 질문.. 태연은 고개를 끄덕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애달픈 가사의 노래..
==
그대의 하루는 아름다웠나요
어제와 달라진게 있던가요
대답은 그렇게 중요한적 없어요
그저, 그대의 안불 묻고 싶을 뿐
솔직히 기댈 자신이 내겐 없어요
소중한 뭔갈 갖는게 두려워요
오늘도 한걸음 멀리에서 바라만 보죠
얼려둔 내 마음을 녹이지 마요
두 볼에 눈물이 흐르면, 어떻게 하려고
모든걸 믿으라고 말하지 마요
한번 더 무너져버리면, 어떻게 하라고, 그때 난
노래를 들으며.. 정인은 흘끗 태연의 표정을 보았다.
어째서인지 태연의 표정은 제 마음보다 더 아파보인다..
정인은 멍하니 제 무릎위에 놓인 태연의 재킷을 응시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한걸까.. 정인이 머리를 흔들며 생각들을 털어낸다.
이 노래를 듣고 내리겠다더니, 이제 1절도 다 끝나지 않은것 같은데..
정인이 태연에게 재킷을 내민다.
"저 가볼게요.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민검사님.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태연이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종이백을 정인에게 건넨다.
정인의 동네 일식집 이름이 적힌 종이백을 받아든 정인이 '어?' 하고 놀란듯 태연의 얼굴을 본다.
"저녁.. 못먹었잖아. 들어가서 먹어"
왠지 눈물이 날것 같아 .. 정인은 도망치듯 차에서 내려.. 돌아보지 않고 걷는다.
==
그대의 하루도 고단했었나요
느려진 발걸음이 안쓰러워
들리지 않아도 느낀 적이 있었죠
우리, 서로의 안불 묻고 있단걸
솔직히 흔들린 적이 너무 많아요
그대와 잠시 웃던 매 순간마다
달콤한 순간은 왜 날 항상 두렵게 하죠
얼려둔 내 마음을 녹이지 마요
두 볼에 눈물이 흐르면, 어떻게 하려고
모든걸 믿으라고 말하지 마요
한번 더 무너져버리면, 어떻게 하라고, 그때 난
숨겨둔 내 마음을 읽지 말아요
참았던 말이 쏟아지면 어떻게 할래요
긴 시간 흐른 뒤에 곁에 있다면
그때는 다 얘기할게요, 사랑했었다고, 그대를
윤하의 애잔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심장을 찌른다.
노래가 끝날즈음... 태연은 저만치 느리게 걷고 있는 정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저도 모르게 차문을 열고 내린 태연이 뛰듯이 정인에게 간다.
돌아선채 .. 뒤돌아 보지 않은채 걸음이 힘겨워 보이는 정인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아 제게로 돌려세운다.
울고 있을것 같아서.. 왠지 뒷모습에서 조차 눈물이 떨어지는것 같아서 이대로는 보낼 수 없을것 같았는데..
눈물이 그득한 정인의 커다란 눈망울이 흔들린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태연은 정인을 품으로 당겨 안는다..
"유정인.. 정인아.. 울지마라. 제발.. 혼자 울지마. 내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제발.. 위로해줄 사람도 없이 혼자서 울지마."
갑자기 뒤따라와 저를 품에 안은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지금 그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것 같아 정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안울어요.. 안울게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울지 않겠다는 정인을 조금 더 힘주어 안아본다. 정인의 따스한 체온이 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것 같다.
어쩌면 차갑게 식어버린 혈관속을 흐르는 피조차도 더워질것 같다.
정인을 놓아주고 눈물이 흐른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고 가만히 얼굴을 감싸 이마에 입을 맞춘다.
"들어가.. 아무생각 하지말고 쉬어. 내일 전화할게. 알았지?"
제 손안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정인을 다시한번 꼭 안아주고 등을 떠밀어 집으로 들여보낸다.
그자리에 그대로 선채 정인의 집에 불이 켜지는걸 확인한 후 태연은 차에 오른다.
"이렇게.. 흔들려도 되는걸까.. 그래도 괜찮은걸까 .. 정인아..."
노래가사처럼 제가 흔들리고 제 마음이 녹아버리면 .. 정인을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도 주지 않으면서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가 제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건 잔인하다..
너무 잔인한 짓이다.
마음 주지 않으며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것 보다는 그녀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기로 하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자.. 정인이 곁을 떠나겠다 말하기 전까지는..
온 마음을 다해 미친듯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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