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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은 정인을 자신의 집무실 소파에 데려다 앉혀준다.
"뭐에요. 제 말은 다 무시하구. 진짜 이러실꺼에요?"
"내여자 내가 안아다 옮기는데 뭐가 잘못이란 거야? 대체"
내여자.. 라는 단어는 정인을 입다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왜? 마음에 안들어?"
"진짜 그렇게 저 놀리는것 까지 어쩜 하나도 안변하셨네요. 치-"
" 네가 사라지기 전에 이미 내 애인이었고 지금도 바뀐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내 옆자리 달라고 조를땐 언제고
이제 마음이 바뀐거야 설마?"
'아니 어쩌면 저런 말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수 있는거지? 민검사님 오늘 뭐 잘못 드셨니?'
정인이 태연을 향해 살짝 눈을 흘긴다.
"민검사님 답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나 다운건 어떤건데?"
태연은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한듯 꽤나 즐거운 표정이다.
그에 정인은 심통이라도 난듯 한글자 한글자 힘주어 대답한다.
"차갑고! 무뚝뚝하고! 시크하게! 제가 민검사님한테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얼음물 뚝!뚝! 떨어지게! 그게 민검사님이죠.
그니까 그만 놀리세요"
"내가 유정인한테 그렇게 못되게 군거야? 반성해야겠군."
"네! 반성은 하셔야죠.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지금처럼 그렇게 .. 그런건 하지마세요"
"싫은데"
"네?! 아니 제가 지금까지 한 얘기 듣긴 하신거에요?"
"들었어."
"그런데도 싫다는거에요? 계속 하신다구요? 저 밖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황형사님이랑 동만이가 이제나 저제나 건수 잡으려고
혈안이 돼있는데요? 그래도 싫다는 말이에요? 정말?"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는것과 동시에 태연은 정인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기고 일어서 자리로 가버린다.
태연의 행동에 놀라 눈만 깜빡이고 있던 정인이 정신을 차리고 태연을 봤을땐 이미 그는 책상위에 쌓여있는 사건파일들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서류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고개 한번 안드는 태연의 모습에 정인은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오늘 민검사님은 정말 이상해.. 왜 갑자기 안하던 짓을.. ' 이라는 생각도 잠시....
정인은 어느새 일에 집중하고 있는 태연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서류를 검토하느라 숙여진 그의 조각같은 옆선에..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에.. 꼭 다문 그의 붉은입술에....
정인의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저 입술이 여기 닿았단 말이지?.. '
정인은 태연의 입술이 닿았던 제 이마로 손을 가져가며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다.
**
몇개의 서류들에서 눈길을 떼지 않던 태연이 마지막 파일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곧 정인의 앞으로 오더니 들어올때 했던데로 정인을 안아들기 위해 몸을 숙이지만, 정인이 양손을 쭉 뻗어 그를 밀어내는 바람에
멈칫 다시 일어선다.
"왜그래?"
"저기! 저기요, 그냥 휠체어를 가지고 오는게.. 그.. "
"내 생각은 아까 분명하게 말한것 같은데?"
태연은 정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간단하게 대답해 버리고는 다시 정인에게로 몸을 숙인다
"그,그래도.. 보는 눈들이"
"그런걸 신경쓰기엔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아? "
정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제야말로 행복해 질거라고 믿었던때...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그 사고가 일어나고 정인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난 4년의 시간을 태연은 정인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채워야 했다.
자의였든, 타의였건 간에.. 함께 하지 못한 그 시간들이 아쉽고 아까운건 두사람 모두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건..."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너한테 해줄수 있는건 뭐든 할거야. 날 말릴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접는게 좋을꺼야"
태연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인을 안아올린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태연의 모습은 다른사람들의 눈길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당당하기만 하다.
"민검사님.."
정인이 태연의 목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안기며 태연을 부른다.
정인의 부름에 태연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본다.
"기회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어요.. 4년이나.. 혼자이게 해서.. 너무 늦게 와서..미안해요...그리구..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붉게 물든 정인의 얼굴이.. 부끄러운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그럼에도 저를 향한 진심이 묻어나는 한마디 한마디가 기쁘고 고맙다.
말을 마치고 제 품안으로 파고드는 정인이 못내 사랑스러운듯 태연은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정인의 이마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춘다.
"이렇게 왔잖아.. 그럼 된거야. 고맙다 정인아"
태연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부드러웠고 그와 오랜시간 함께해온 순범에게 조차 낯설만큼 편안해 보였다.
**
태연의 차 조수석에 앉은 정인. 실로 오랜만이라 새삼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
"뭐가?"
"민검사님이 운전하는 차에 타는거요. 그건 그렇구 어디 가는거에요 우리?"
"피해자 주변인 만나봐야지. 우선 가족들부터"
정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왜 저랑 가세요? 불편하실텐데 저랑 다니시려면.. 차라리 재하 오빠랑 가시는게.."
"말했잖아. 시간이 아깝다고"
정인은 또다시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감추고 싶어 고개를 푹 숙인다.
태연이 흘러내린 정인의 머리칼을 쓸어넘겨준 후 안전벨트를 해주려고 정인에게로 몸을 기울이자 정인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질끈 감는다.
"뭐해?"
태연의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뜬 정인은 코끝이 닿을만큼 가까이 있는 태연의 얼굴을 보고 숨을 삼킨다.
"이제 좀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
태연은 그런 정인이 귀엽기만 하다. 여태 이런 상황이 올때마다 정인은 어쩌면 이렇게도 한결같은지..
"피이- 됐거든요? 어서가요."
부끄러움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빨간 입술을 삐죽이며 새침하게 말하는 정인의 모습에 태연은 다시한번 소리내어 웃고 만다.
이런 마음으로 웃어본것이 오랜 전설이라도 되는듯 새삼스럽다.
정인이 저에게 사랑인 것이.. 언제부턴가 이렇게도 제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정인의 자리가 너무도 큰것이 놀랍다.
차갑게 굳어가던 저를 이토록 노곤하게 만드는 존재가 그녀임이 새삼 더더욱 놀랍고, 감사하다.
다시는 허무하게 정인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번더 정인의 얼굴을 보며 각오를 다지는 태연이다.
***
세번째 피해자의 가족을 만나고 나오는 길...
태연이 막 운전석 문을 열 때, 동만으로부터 또다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왜요? 무슨일인데요?"
정인의 걱정스런 물음.
"시신이 또 발견됐다는군."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는군요.. 현장으로 가야죠?"
태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현장으로 출발한다.
**
현장에 도착해보니 순범이 먼저 와있었다.
"형. 어때?"
"어. 지금까지와 같다. 같은놈 짓이지 뭐. 여기도 깨끗해. 살해장소는 따로 있는거지 뭐"
"이번엔 감각이 아니라 입막음이네요.. "
가까이서 시신을 살펴보던 정인이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아주 미친놈이야, 아주 지독해"
정인의 말에 순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서리를 친다.
정인은 얼어붙은듯 시신에 시선을 고정한채 움직이지 않는다.
네번째 피해자... 그녀의 모습이 정인 자신과 너무도 많이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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