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회의중인 다섯사람.
"이 사건을 연쇄살인이라고 보는 근거는?"
태연의 질문에 정인이 회의실 벽면에 붙은 사진들을 가리킨다.
"저 사진들을 보세요. 공통점이 뭘까요?"
"휠체어? "
순범의 대답에 정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요 피살자 세명은 모두 휠체어를 사용해요. 밝은갈색으로 염색된 머리, 쌍거풀진 눈, 동그란 얼굴형, 아담한 체구. 어때요?
이 세사람. 닮은거 같지 않나요? "
순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그러고보니 그러네.. 닮은거 같네. "
"그런데 .. 정인누나 하고도 닮은것 같은..."
동만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순범의 솥뚜껑 같은 손이 동만의 등짝을 인정사정 없이 후려친다.
"이 쟈식은 재수없는 소리를! 유검 계속해요 이녀석은 신경쓰지 말고 하하하"
정인은 순범의 어색한 표정에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헛기침을 몇번쯤 해야 했다.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고 설명을 이어간다.
"부검 보고서 받으셨죠? 피살자 세명 모두에게서 목,가슴,복부 할것없이, 그리고 생식기까지 여러개의 자상이 발견됐어요. 과잉살상..분노죠..
생식기 손상의 경우는 욕구불만을 의미하고요. 어쩌면 범인이 성불구 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세명의 피살자에게서 다른점도 있잖아요? 첫 희생자는 안구가 적출됐구, 두번째는 화학약품에 의한 비강내 손상,
세번째는 손가락 피부가 모두 벗겨진채 발견됐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죠?"
동만의 질문에 정인이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눈,코,손. 뭘 의미할까요? "
"글쎄요?.. 잘.."
동만은 여전히 뭔소린지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젓는다.
"그게 뭘 의미하는거지?"
태연이 다시 묻는다.
"감각이에요. 범인은 피살자들에게서 각각의 감각을 빼앗은거죠. 아마 피해자들은 빼앗긴 그 감각으로 범인을 자극했을거라고 생각돼요.
첫번째 피해자는 시각적으로 범인을 자극했겠죠. 예를 들면 기분 나쁜 시선같은? 후각이나 촉각도 같은 맥락일거에요. 어쩌면 그게 범인이
피해자들을 납치한 이유일지도 모르구요"
"유검. 그게 뭔소리에요? 그럼 범인이랑 희생자들이 아는 사이였다 이거에요?"
"아닐수도 있지만 그럴수도 있다는거에요. 확실한건 피해자들은 범인을 모를수도 있지만 범인은 피해자들의 평소 생활. 그러니까 이동경로를
아주 잘 안다는거에요. 분명 피해자들을 납치할땐 차량을 이용했을텐데도 근처 cctv에 전혀 잡히지 않았고, 목격자도 전혀 없는걸 보면 평소에
피해자들이 어느길로 어떻게 다니는지 어디쯤에서 납치를 해야 하는지 범인은 모두 꿰고 있었다는거죠"
"치밀하네요.."
동만이 치가 떨린다는듯 부르르 몸을 떨며 말한다.
"게다가, 범행 수법도 더 잔인해지고 있어요. 첫 피살자에게서 안구를 적출한건 피살자가 사망한 다음이었지만.. 두번째부터는 피해자가 살아있을때
화학약품을 콧속에 들이붓고, 손가락 피부를 벗기기까지 했으니까요"
"피해자들이 범인을 알았는지 아닌지는 불확실하지만.. 범인은 분명히 피해자들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이 자주 가던
곳에 범인도 자주 드나들었을테죠. 일단.. 피해자들의 특성상 병원이나 재활치료센터 같은곳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재하의 설명이 끝나고, 다시 정인이 말을 잇는다.
"범인은 실제 분노의 대상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는것 같아요. 그리고 그 분노는 감각과 관련이 있겠죠.
문제는.. 실제 분노의 대상을 해치기 위해서 연습을 하는거냐, 아니면.. 실제 분노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살인을 시작한거냐 에요..
만약 후자라면.. 쉽게 끝내지 않을테니까요. 또.. 범인은 시체를 유기한 장소 일대를 자주 다녔을거에요. 그래서 cctv가 없는 장소와 그 장소에
어느시각에 가장 인적이 드믄지를 잘 알고 있었을 거구요. 그렇다는건 범인의 직업이 한곳에 메여있는게 아닐거란 얘기가 돼요. 우선 이교수님
말대로 병원이나 재활치료센터 같은곳에 일용직으로 고용된 사람들 중에 피해자들이 납치된날 근무하지 않은 사람들 먼저 확인해보는게
좋을거 같네요"
"유검사님 아니 정인누나 어떻게 그렇게 콕콕 집어내세요? 와.. 진짜 다시 보게되는데요?"
"그러게, 유검은 전보다 더 똑 부러지네. 언제 그런걸 다 공부를 했데? 아우~ 나는 다시 어린시절로 돌려준다구 해도 공부하는거 싫어서
됐다고 그럴판이구만"
동만과 순범이 놀랍다는듯 정인을 추켜세우고, 재하 역시 정인이 자랑스러운듯 웃음띤 얼굴로 보고있다.
"아 왜들 그러세요. 뭐 대단한 거라고.. "
그런 네사람을 역시나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태연이 다시금 표정을 굳힌다.
"자자, 밀린 회포는 나중에들 풀도록 하고. 먼저 수사에 집중하자구. 우선 피해자들이 납치된 날 행적을 다시한번 짚어봐야 할거 같아.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예정에 없던 누굴 만나지는 않았는지.. 그런것들 위주로 형이 수고좀 해줘. 그리고 최동만, 너는 우선 피해자들이
다니던 병원 직원들중에 의심가는 사람은 없는지 확실하게 체크해봐. 이교수님이 함께 도와주시죠.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지"
"네? 아..네. 그러죠"
정인에게 부탁할거라 생각했던 재하는 뜻밖에도 저에게 묻는 태연의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한다.
"저는요? 제가 동만이 도와줘도 괜찮은데.."
"유정인은 나랑 같이 갈데가 있어"
"저랑요?.."
정인도 뜻밖인듯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태연과 재하를 번갈아 본다.
조금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느낀 순범이 정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오케이~ 우리 유검 오니까 정말 좋네! 그냥 일이 일사천리로 팍팍! 잘 될거 같아. 정말 잘 돌아왔어요 유검"
"고마워요. 황형사님."
푸근한 순범의 미소에 정인도 생긋 웃어보인다.
**
각자 할일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때였다.
태연이 갑자기 정인을 번쩍 안아드는것과 동시에 정인이 꽥 소리를 지른다.
"ㅁ뭐,뭐하시는거에요?!"
"조용히 좀 하지? 다들 보는데"
그제야 정인이 주위를 살핀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순범과 동만 재하까지 모두 이쪽을 보고 있다.
그중에 동만의 표정이 압권이다. 턱이라도 빠진건지 헤 벌어진 입에서는 곧 침이라도 떨어질 참이다.
처음엔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두사람을 보던 순범은 어느새 흐믓한 표정이 되서는 태연을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지까지 들어보인다.
정인의 시선이 이미 고개를 돌린 재하에게 잠시 머문다..
"그러니까 뭐하시냐니까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정인이 다시 묻는다.
"나가기 전에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래서 저기 데려다 앉히려고"
태연이 고갯짓으로 제 집무실을 가리킨다.
"그.. 그냥 여기서 기다릴께요. 네?"
정인이 다시한번 속삭이지만, 그녀의 말은 그대로 무시당하고 만다.
어느새 태연은 정인을 안아든채 자신의 집무실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정인은 부끄러움에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양손에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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