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Written by Angelique(carna)
어제 저녁부터 으실으실 자꾸 움츠려 들더니 오늘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어 미적거리다 겨우 몸을 추스려
출근을 하긴 했는데.. 어지럽고 속도 메스꺼워 정인은 앉아있는것도 힘에 부친다.
어떻게든 견디고는 있지만.. 제발 덕분에 오늘 하루 사건 없이 좀 지나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결국...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와 전화를 받는 동만의 목소리에 정인의 바램도 산산히 부서져 흩어지고 말았다.
:
:
공사가 중단돼 비어있는 어느 건물 공사장.
사건현장은 건물의 3층.
지끈거리는 골치에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차에서 내린 정인이 한쪽에 서있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순범에게 묻는다.
"쟤들이에요? 신고한게?"
"어? 유검 왜 그래요? 머리 아파요? 감기?"
제 질문은 싹둑 잘라 잡숫고 또 엄한 참견을 하는 순범이다.
"그냥 두통이에요. 시신 발견했단 애들이 쟤들인가봐요? 잔뜩 쫄아있는게 맞나보네"
어디가 아프네 마네 얘기 했다가는 또 별것 아닌걸로 화들짝 놀라 부산스럽게 할것이 빤히 보이는 순범의 표정을
보며 정인이 대충 손을 내저으며 두통이라고 둘러대곤 다시 묻는다.
"아. 맞아요 저녀석들. 학생이라는 쟈식들이 공부는 안하고 이렇게 후미진데나 찾아다니고 말이지.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마른 녀석들이 아우~ 그냥!"
또또 저렇게 흥분하신다... 정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래도 아직 어린애들인데 많이 놀랬겠구만. 뭐 저맘땐 다 삐뚤어지고 싶은거잖아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황형사님 담배 언제부터 피우셨어요?"
"어? 뭐.. 아 그거야.. "
"그러니까 너무 뭐라고만 하지 마시구, 혹시 뭐 건드린거 없는지, 달리 수상한거 본건 없는지. 살살 달래서
물어보시라구요. 민검사님은요? "
순범이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난간도 없는 회색 콘크리트 계단.. 3층까지 올라가며 정인은 몇번이나 어지러움에 멈춰서야 했다.
3층에 올라오니 감식반이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증거 수집을 하느라 분주해 보인다.
한걸음 내딛으려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 돌며 몸이 휘청거리는 통에 두눈을 꾹 감은채 벽을 짚고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지만 쉬이 가시지 않는 현기증에 결국 정인이 주저 앉고 만다.
"유정인?.. 유정인!"
저를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곧바로 제 팔을 잡는 차가운 감촉에 정인이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올려 태연을 올려다 본다.
"아... "
"아.. 가 아니잖아. 너 왜그래? 어디 아픈거야?"
"아.. 아니에요. 그냥 잠깐 어지러워서.. 괜찮습니다."
분명 괜찮아 보이지 않음에도 본인이 괜찮다고 우기는데야 달리 해줄 수 있는게 없었기에.. 태연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결국 정인의 팔을 잡은 손을 놓아야 했다.
어지럼증에 두통.. 메스꺼울정도로 밀려오는 속쓰림까지.. 몇일은 된것 같지만.. 이 남자에게 아프다는 말을 순순히
내뱉을 수는 없었다.
서글프게 비가 내리던 그날 제 입에서 나온 고백 아닌 고백.. 그가 흘리던 눈물.. 의미를 알 수 없는 입맞춤...
그 후로 정인은 제가 다짐했던 그대로 그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자꾸만 돌아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건 아직 어쩔 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잊어보겠다 .. 마음 주지 않겠다 마음먹은 후로 점점 더 제 마음을 조여오는 아픔이 이제 마음에서 몸으로 옮겨온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날 이후로 정인은 제대로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으니.. 지금 당장 병원에서 영양실조라는 진단을
받는대도 이상할게 없었다.
주저 앉았던 정인이 간신히 털고 일어나며 태연을 향해 힘겹게 웃어보인다.
"신경성이에요.. 그냥 좀 신경쓸 일이 있어서.."
묻지도 않는 말을 작게 중얼거리듯 변명을 늘어놓던 정인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입술을 깨문다.
순범이 올라오고.. 시신의 신원과 잔뜩 겁먹고 있던 학생녀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하는 동안 정인
은 유체이탈이라도 겪는것 같았다.
"그럼 전 피해자 집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정인의 모습이 불안해보여 태연이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때였다.. 휘청이듯 불안한 걸음으로 계단까지 다다른 정인이 허물어지듯 계단아래로 고꾸라지는것을
태연이 빠르게 다가가 낚아채듯 끌어당긴다.
"유정인. 너! "
아프면 아프다고 말이라도 할것이지 내도록 불안하게 휘청이면서도 아픈곳 없다고 잡아떼며 고집을 부리는
정인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라 야단이라도 칠 요량으로 버럭 소리를 친다. 그런데...
잡아당기는 힘에 못이겨 안기듯 품속으로 쓰러진 정인에게선 아무 반응이 없다.
그대로 정신을 잃은 정인의 모습에 심장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형! 여기 좀 부탁할게."
"어? 어..그래. 아,알았으니까 어서 벼,병원 그래 어서 병원으로 가라."
걱정스러운 순범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정인을 안아들어 계단을 내려간다.
초등학생 몸무게도 이보다는 더 나가겠다 싶게 가벼운 정인의 무게에 태연이 나지막한 한숨을 흘린다
:
응급실에 도착해 체온을 재고, 혈액검사를 하고.. 다른 병력은 없는지 .. 약에 대한 알러지 반응을 보인적은 없는지
이것저것 물어오는 간호사의 질문에 태연은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스스로를 탓해야 했다.
영양실조라는 의사의 말에 태연이 두눈을 꾹 감으며 한숨을 내쉰다.
한편으론 큰 병이 아니라는것에 안심하며, 다른 한편으론 대체 얼마나 속을 끓였길래 이 모양이 되었나 싶어
미안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응급실 밖으로 나와 태연이 동만에게 전화를 건다.
:
링거액이 반쯤 줄었을때 깨어난 정인은 걱정스런 얼굴로 곁에 앉은 동만의 모습에 미간을 좁힌다.
"어떻게 된거야?.. "
"유검사님.. 괜찮으세요? 유검사님 현장에서 기절하셨잖아요. 기억 안나세요? "
"기절?.. 아... 그랬나.. "
"민검사님이 유검사님 깨어나시면 식사 하시게 하고, 댁에 모셔다 드리라고 신신당부 하고 가셨어요"
"민검사님이?"
"네. 사건도 그렇고.. 유검사님 깨나셨을때 민검사님이 계시면 부담되실거라고.. "
"아... 그래.. 그렇구나.."
"이거 다 맞으면 가셔도 된데요. 처방전 받아서 약도 사왔어요. 아니 요즘 세상이 어느땐데 영양실조에요 유검사님 진짜. "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 영양실조라니.. 정말 그렇게나 못먹었었나.. 새삼 떠올려보니..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못먹은것 같다.
그가 이런 제 모습을 보며 얼마나 우스워했을까 생각하니 창피함에 짜증이 치밀어 눈을 꼭 감아버린다.
링거를 다 맞고 병원을 나온다.
그냥 집에 가겠다는데 굳이 저를 붙들고 늘어지는 동만에게 잔뜩 짜증을 담아 윽박을 지르는데도 이렇게 보내면
시말서 써야할지 모른다며 끝까지 저를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아우.. 진짜.. 알았다 알았어. 내가 졌다 졌어"
그제야 울상이던 얼굴을 펴더니 또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거리며 웃는것이 아직 어리긴 어린가보다.
툴툴거리는 저를 데리고 동만이 향한 곳은 시내의 어느 죽집.
"여기 죽 끝내줘요 유검사님. 입맛 없을때 여기 죽 한그릇 먹으면 저멀리 바다 건너 갔던 입맛도 초고속으로 돌아온다니까요. "
입안도 껄끄러울테고, 제대로 먹지도 않아서 소화력도 떨어졌을테니 꼭 죽을 사먹이랬다고 .. 뭐가 그리 신나는지
동만은 계집아이 마냥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신신당부 해가며 카드까지 쥐어줄거면 그냥 당신이 하지.. 비정규직이라고 이렇게 막 부려먹어도 되는건가?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애를 이렇게 붙들어두고....
"미안하다 동만아.. 괜히 나때문에 집에도 못가고.."
재잘거리던 동만이 두눈을 땡그랗게 뜨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유,유검사님.. 왜 그러세요? .. 제가 너무 시끄러웠어요?.. 조,조용히 할게요.."
진심으로 미안해져서 한 말인데.. 평소에 제가 어땠으면 동만이 이러나 싶다.
"아냐, 정말 미안해서 그래. 퇴근시간 지났는데.. 그냥.. 몸이 아프면 괜히 사람이.. 그런거 있잖냐. 그런가보다 해라."
제 몫으로 놓여진 전복죽을 뜨는둥 마는둥 .. 하고 있으려니 .. 동만이 앞에 놓인 반찬을 제 숟가락에 얹어준다.
정인이 놀란듯 고개를 들자 동만이 씨익 웃는다.
"그거 다 드실때까지, 적어도 반 이상 드실때까지 못가세요. 민검사님이 꼭 그만큼은 드시게 하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어서 드세요. 입맛 없으셔도 억지로라도 드셔야 해요. 병원에서도 그랬단 말이에요~ 어서요"
결국 저를 뚫어지게 보고있는 동만의 강압적인(?) 눈빛에 못이겨 죽그릇을 반쯤 비우고 나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제 차로 움직이느라 정작 뚜벅이 신세가 된 동만을 생각해 그냥 집에 가라니 또 민검사님이 어쩌고 해가며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정인을 집 문앞까지 데려다 주고서야 뒤돌아서는 동만에게 내일 점심을 사주마 약속을 한다.
동만이 쉴새없이 떠들어서인지.. 텅 빈 집안으로 들어오니 오늘따라 낮게 가라앉은 적막함이 끔찍하게 싫다..
가방이며 겉옷을 대충 던져두고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린 정인이 갑작스레 밀려오는 쓸쓸함에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않고 쏟아내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는데 가방안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어댄다.
침대 아래로 팔을 뻗어 가방을 잡아당겨 대충 가방안에 손을 넣고 뒤젹여 휴대폰을 꺼내보니 태연이다.
정인은 그냥 휴대폰을 가방위로 던져버렸다.
하필 그 앞에서 쓰러진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지금 전화를 받아봐야 무슨말을 해야할지 머릿속도 하얗기만 했으니까...
몇분쯤 지나고 다시금 울리는 휴대폰 ..
액정에 떠있는 민태연검사님 이라는 딱딱한 글자에 일어나 앉아 침대옆 협탁에 놓인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는다.
그에게로 가는 제 마음을 잘라내야겠다 마음먹었던 그날 이후 '민태봉^^' 이라고 저장되어있던 이름을.. 보기에도
딱딱한 '민태연검사님'으로 바꿔버리고, 딱딱한 그 글자만큼 제 마음도 단단해지길 기도했었는데...
여전히 그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정인을 설레게 한다.
한참을 전화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정인이.. 통화거부를 눌러버린다.
지금 그의 전화를 받으면 또다시 그를 붙들것 같아서...
그런 정인의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태연은 몇번이나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온다.
정인은 끝내 휴대폰의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그 목소리를 듣고 투정이라도 부려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그
를 향한 제 마음을 돌이킬 수 없게 될것 같았다.
이제는 바닥이 난줄 알았던 눈물이 또다시 차오른다.
그를 향한 제 그리움 만큼이나.. 그를 원하는 제 마음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정인이 끝내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어버린다...
얼마나 울었을까.. 온몸에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듯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정도로 쏟아내고
났더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것도 같다.
창밖은 이미 캄캄한 어둠이 내려 앉아 있는데.. 정인은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갈듯 집안에 불도 켜지 않았다.
갑작스레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몇번이나 요란한 소리로 어두운 집안의 공기를 흔들어 댄다.
정인은 흘러내린 눈물자욱을 지울 생각도 하지 못한채 침대 아래 놓인 슬리퍼에 발을 꿰고 거실로 나간다.
벽에 있는 스위치를 올리고.. 불빛에 눈이 부셔 몇번인가 눈을 깜빡인다.
"누구세요..."
인터폰 수화기를 들고 울먹이는 소리로 묻는데.. 저쪽에선 대답이 없다.
안그래도 기운 없는데 이 밤중에 누가 장난질인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끈한 짜증스러움이 치밀어 오른다.
평소의 정인이라면 잔뜩 짜증섞인 목소리로 윽박이라도 질렀을테지만.. 지금 정인은 목소리를 내는것 조차 힘겨울만큼
지쳐있었기에 그저 묵묵히 인터폰 수화기를 들고 기다릴 뿐이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정인이 막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찰나였다..
"유정인"
정인은 귀를 의심했다. 그럴리가 없다. 그 일리가.. 없다.. 분명.. 그럴 일은 없었다.
"누..구..세요?.."
"문 좀 열어봐. "
정인은 하마터면 수화기를 놓칠뻔했다.
"민검사님?.."
"문 좀 열어봐. 유정인"
너무 놀란 나머지 정인은 제 얼굴이 지금 어떤지도 생각지 못한채 문을 열었다.
문이 홱 열리고 태연이 현관으로 들어선다.
"너 대체 전화도 안받고 뭐하는..."
화난 목소리로 꾸짖듯 쏟아내던 말을 끝맺지 못하고 태연이 미간을 좁히며 한발짝 다가선다.
"울었어?.. "
그제야 제가 울고 있었다는것과 눈물도 닦지 못한채 문을 열었다는 것이 생각난 정인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지만 샘솟듯 차오르는 눈물은 야속하게도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태연의 차가운 손가락이 턱끝에 닿는다. 그의 손에 의해 들어올려진 정인의 얼굴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만큼
아프고 서러운 눈물로 얼룩져 있다.
차가운 손끝이 뺨에 닿는다. 태연의 손가락이 정인의 눈물자욱을 지워낸다.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은 그럼에도 계속해서 눈물길을 만들고 있지만.. 태연의 부드러운 손길은 그에 질새라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아무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인은 가만히 선채 태연의 손에 저를 맡기고 있다.
태연이 가만히 정인을 당겨 품에 안고 등을 쓸어준다.
"나 같은게 뭐라고 .. 넌.. "
그러고싶지 않았지만.. 그대로 태연에게 안겨 서러움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정인은 남은 기운을 온통
손끝으로 모아 태연의 가슴을 밀어낸다.
"죄송해요.. 걱정끼쳐서.. 내일 제대로 출근할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태연은 아무말 않고 정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세요.. 늦었어요.."
고개도 들지 않은채 정인은 그대로 돌아선다.
:
정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해서 그 아픈 표정을 모를리 없다.
이렇게나 저를 밀어내는 말들만 하는것이 저로 인한것임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돌아선다면..
그런다면..
두번 다시 정인의 마음은 제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태연은 돌아서는 대신 손을 뻗어 돌아서는 정인의 손목을 잡는다.
놀란 정인이 고개를 들어 태연을 올려다본다.
두 눈엔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눈물을 매단채 .. 정인의 원망스러운 시선이 태연에게 닿는다.
이제와서 왜 저를 잡느냐고.. 그렇게나 제 마음을 밀어낼땐 언제고.. 왜 이제와서 저를 흔드는거냐고..
정인의 눈빛이 묻고 있다.
태연은 대답 대신 정인의 손목을 잡은 제 손을 당긴다.
당기는 힘에 못이겨 힘없이 제 품으로 쓰러지는 정인을 어느때보다 소중한 손길로 품에 가둔다.
:
기다려도 제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거라던 그는.. 지금 그대로 제 집에서 나갔어야 했다.
오늘 제가 쓰러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걸까..
몸이 아팠던건.. 그만큼 마음이 아파서였는데.. 제 마음을 아프게 상처낸 사람이..
모든걸 포기하려는 저를 왜 이제와서 이렇게나 흔들어 놓는건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지만.. 민태연이란 남자는 아마 평생가도 그 속을 알 수 없을것 같다.
영양실조 진단을 받을 만큼 제대로 먹지 못했던 몸이 ..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던데다..
집에와서 통곡하듯 울어젖혔으니... 이젠 정말 서있을 힘도 없다..
이 남자를 밀어내고.. 매몰차게 돌아서야 하는건데.. 차가운 손끝과는 다르게 .. 왜 이렇게 그의 품은 따스한건지 ..
다 잊고 그 품에서 잠이라도 들고 싶어진다..
그래도..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며.. 정신을 가다듬고 팔을 들어 태연을 밀어내려고 해보지만..
태연은 정인을 안은 팔에 힘을 풀지 않는다.
"저.. 괜찮아요... 놔주세요.."
놓아달란 한마디를 하는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건지.. 몇번이나 입술을 달싹인 끝에 겨우겨우 쥐어짜듯 괜찮다 말하지만..
태연은 정인을 안은 팔을 풀지도.. 어떤 대답을 하지도 않는다..
"민검사님.. "
"유정인.. 정인아.. "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은 어째서 이토록 달콤하게 들리는건지..
정인은 태연을 밀어내려던 것도..냉정한 말로 돌아서려던 것도 모두 잊어 버렸다.
"행복할거란 약속은 못해.. 어쩌면 지금보다 몇배 더 힘들고 괴로울 수도 있어.. 내가 약속해줄 수 있는건..
너에 대한 내 마음 하나 뿐이지만.. 내 곁에 있을래..?.. 더는 밀어내지도.. 부정하지도 않을테니까..
최선을 다해서 지금까지 해주지 못한만큼 더 많이 사랑할테니까.. 내 옆에 있어줄래?.."
또다시 미안하다 말할줄 알았다.. 네 마음 너무 잘 알지만 받아주지 못하니 포기하라 말할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정인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걸까..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그의 곁에서.. 그의 여자로 있을 수 있다면.. 아마 내일 당장 죽어야 한대도 고개를 끄덕일텐데..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걸까.. 이 남자는?...
태연의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그의 눈을 본다.
정인의 눈동자가 눈물 맺힌 태연의 눈빛과 마주한다.
그러겠노라..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말하고 싶은데..
엉뚱하게도 이런 순간에 입술이 붙어버린듯 아무말도 나오질 않는다.
정인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 있을게요.. 민검사님 곁에.. 있을게요.."
태연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리는것 같았다.
그 미소를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태연은 손으로 정인의 뒷머리를 감싸 제 품으로 당긴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듯 .. 태연은 정인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더 꽉 끌어안는다.
"끝까지 가보자.. 더는 도망치지 않을게.. 정인아.. 사랑해.. 사랑한다 유정인."
'Bloody L'amant > destiny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와 준다면... (0) | 2013.12.31 |
---|---|
태연정인 조각 - 보고싶었어요 (0) | 2013.12.31 |
태연정인 조각 - 오늘만.. 오늘까지만... (0) | 2013.12.31 |
태연정인 조각 - 사랑한다고 한것도 아니잖아요? (0) | 2013.12.31 |
꿈.. 사라지는것.. (0) | 2013.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