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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L'amant/destiny

돌아와 준다면...

 

 

돌아와 준다면...

 

 

 

Written by Angelique(carna)

 

 

 

 

 

 

 

 

- 그립다..     보고싶다...      어딨어요?...       잘 있는거죠.. 그렇죠?...       민검사님...          민..태..연...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은 정인은 늘 가지고 다니는 작은 노트에 닿을 수 없는 말들을 끄적이고 있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 아래로 더위에 숨을 몰아쉬며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말라 뼈밖에 남지 않은 정인의 모습과는 

다르게 활기가 넘친다..

고개를 들어 거리를 지나는 이들을 바라보던 정인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노트위에 적힌 낙서들을 지워버렸다.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마음을 따라 이제는 생각조차 뜻대로 되질 않는다.

 

꼬박 한달 하고도 보름을 병원에서 보내면서도 정인의 머릿속은 태연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어떻게든 그의 자리를 지켜주고 싶었기에.. 할 수 있는 모든걸 동원해 정인은 특검팀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퇴원후 6개월.. 모든건 원하는것과는 반대로 흘러가는것 같았고, 결국 특검팀은 부서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생명줄처럼 붙들고 있던 끈이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지만, 정인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기 보다는 그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 저 깊숙히 묻어두고 똑바로 서는 쪽을 택했다. 

그가 돌아왔을때.. 그가 설곳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정인 자신의 위치가 굳건해져야 한다는 판단에서 였다.

하지만.. 그리움을 묻어두는 일은.. 그리고 아무일 없었던듯 지낸다는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유정인' 하고 부르는 딱딱한 음성이 들릴것 같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야트막히 덮어두었던 그리움은

점점 더 무겁게 정인을 짓누른다. 어느새 가득 차오른 눈물에 놀라,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썬글라스를 썼다.

검은 썬글라스 아래로 흐르는 한줄기 눈물을 누군가에 들키기라도 할까 재빨리 티슈를 꺼내 찍어냈다.

 

 

마음을 가다듬고, 앞에 놓인 커피잔을 잡았다. 뜨거운 여름기운을 이기지 못해 유리잔 표면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이

쉼없이 흘러내린다.  그의 손도 이렇게 차가웠었지... 

어쩔 수 없나보다.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그를 밀어낸다는건 불가능하다... 

실없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드니 저만치 헉헉대며 걸어오는 순범과 동만이 보인다. 정인을 발견한 동만이 금새 헤실거리며 

공중으로 붕붕 팔을 휘젓는다.

 

 

 

"유검사님 더운데 왜 밖에 계세요"

 

"아우~ 더워! 아주 그냥 푹푹 찌네 쪄!!"

 

걱정스런 인사를 건네는 동만을 한쪽으로 밀치고는 순범은 테이블위에 놓인 물잔을 들어 한모금에 털어넣는다.

각자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한동안 서로 바빠 얼굴도 못보다가 오랜만에 변함없는 두사람을 보니, 순간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시원한데로 가서 밥 먹어요. 우리"

 

우리.. 그 테두리 안에 정말 더이상 그는 없는걸까?..

 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떨림은 정인의 그런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야만다.

 

 

썬글라스를 벗고, 아직 얼음이 남아있는 커피잔을 순범에게 내밀자 순범이 늘 하던데로 커피를 받아들며 찡긋 웃어보인다.

정인이 건넨 커피잔에서 스트로우를 빼버리고 얼음이 녹아 이맛도 저맛도 아닌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는 순범.. 그 곁에서

어찌 지냈는지 뭘 먹으러 갈지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동만.. 그들 앞에 선 자신의 모습...

 

어째서 그만 없는걸까... 정인에게 필요한건 다른 누구도 아닌 민태연 한사람인데.. 다른 욕심을 내는것도 아닌데...

그저.. 그저 곁에 있어주기만을 바라는것 뿐인데.. 평생 짝사랑만 한대도 괜찮은데... 왜 그는 이곳에 없는걸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유검사님.."

 

"유,유검! "

 

눈앞이 자꾸만 흐려지고, 두 남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내가 울고 있나보다...' 

 

울면 안되는데.. 이제 그만 눈물을 닦고, 오랜만에 만난 두사람과 점심을 먹고, 밀린 얘기도 해야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정인은 이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다.

 

"왜... 왜.. 그 사람만 없는거죠.. 어째서...."

 

순범의 두툼한 손이 정인의 어깨를 다독이고, 그 곁에선 동만은 어쩔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돼요..  잊을 수도 없고.. 덮어둘 수도 없어요.. 마음이..아파서.. 너무 .. 아파서..."

 

모른척 덮어두고 사는게 안되서.. 잊혀지지 않아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비쩍 말라버린 볼품없는 정인의

작은 어깨가 가엽게 떨리고 있지만.. 순범도 동만도.. 그 누구도 정인을 달래줄 수 없었다.

태연이 아니면 안된다는걸 정인도.. 앞에 선 두사람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