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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인은 태연을 호텔보안실로 안내했다.
잠시후 한쪽 모니터 앞에서 cctv에 녹화된 화면을 확인하던 태연의 표정이 굳어진다.
고개를 푹 숙인채 빈 휠체어를 밀며 복도에 나타난 호텔직원 복장의 남자가 정인이 있는 방 앞에 멈춰선다.
남자는 품안에서 흰봉투를 꺼내 안에서 잘 보이도록 들고, 벨을 누른다.
모든것이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걸 알면서도 태연의 마음은 정인이 문을 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바램이나 갖고 있는것 또한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져 꽉 다문 잇새로 괴로운 한숨이 새어나온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남자는 한걸음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3분쯤 지났을까.. 남자는 정신을 잃은듯 보이는 정인을 휠체어에 앉혀 데리고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다른 투숙객들에게 여유롭게 눈인사를 건네는 남자를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고,
무릎위에 포근해보이는 담요를 덮고 휠체어에 기대어있는 정인은 잠든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1층에서 내린 남자는 호텔 로비 한쪽에서 기다리던 정장차림에 짙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에게 정인을 인계했고,
정장차림의 남자는 밖에 대기하고 있던 suv차량에 정인을 태우고 유유히 호텔을 빠져 나갔다.
직원복장의 남자는 모자에 가려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정장차림의 남자 역시 선글라스에 가려 생김새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호텔 입구의 cctv 카메라의 위치상 차량의 번호판 역시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건진것 없이 보안실을 나온 태연은 지독히도 무거운 한숨을 뱉으며 제발 정인이 무사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뭐 좀 찍혔던?"
정인이 잡혀간 방앞을 지키고 서서 감식반이 도착하길 기다리던 순범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오는 태연을 발견하곤
한달음에 달려와 묻지만... 태연은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감식반은?"
"지금 오고 있을거다. 어떻게.. 들어가 볼래?"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태연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혹 아까 발견하지 못한건 없는지 다시한번 방안을 찬찬히 훑어보던 태연의 시선이 카펫위에 흩어진 유리파편들에 머물렀다.
괴로움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태연은 무릎을 굽혀 깨어진 유리잔의 파편사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핏방울에 손을 가져가고..
손가락 끝에 묻은 혈액은 짧은 망설임 끝에 혀끝으로 옮겨갔다.
잠시 후 태연은 감았던 눈을 떴다. 푸른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고, 태연의 입술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온다.
가슴을 졸이며 태연이 나오길 기다리던 순범은 방에서 나오는 태연의 눈치만 보고 있다.
"정인이 피는 아니야."
"그래?! 휴.... 그래, 그럴줄 알았다. 암.. 아무일 없을거다.. 그래야지 그럼.."
침대 위에 쪼그려 앉아있던 정인은 차가운 철제문이 철컹거리며 열리는 소리에 무릎을 당겨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의외로 순순히 가져다준 시계를 올려다보니 이제 막 오전8시를 지나고 있다.
열린 문으로 이곳에서 처음 깨어났을때 보았던 남자가 음식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들어온다.
테이블위에 놓인 음식은 어제저녁 가져다 둔 그대로 차갑게 식어있다.
남자는 식어버린 음식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가지고 온 따뜻한 음식을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
어딘지도 모를 이곳으로 납치되어 와 두번의 두려운 밤을 보냈다.
그 이틀동안 저 철문 밖에 두명의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이 지키고 있다는것 외에 정인이 알아낸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매 끼니때마다 가져다 주는 음식 중 정인이 유일하게 입에 대는거라곤 물 뿐이었다.
"정말 손도 않댔군요. 그런다고 달라지는건 없을텐데.... 그러지 말고 먹도록 해요. 당신을 지금 당장 죽게 만들려고 데려온건 아니니까"
정인은 쪼그려 앉은 무릎위에 얼굴을 묻은채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여기 독이라도 탔을까봐 걱정이 된다면 내가 먼저 먹어볼까요?"
달래는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치를 떨며 정인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노려본다.
"나한테.. 바라는게 뭐지?"
"흐음... 지금은 당신이 식사를 하길 바라는데"
"내가 지금 당신이랑 장난이나 치자는걸로 보여?"
"장난 같나요?"
"이봐!!"
앙칼지게 내뱉으려던 정인의 목소리는 이틀이나 굶은탓에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했고,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남자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항복이라는듯 양손을 들어보인다.
남자의 말투는 처음과는 다르게 부드러워져 있었고, 그것이 마치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말하는것 같아 정인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은 당신한테 바라는거 없어요. 정말. 뭐.. 까놓고 말해서 내 목적은 당신이 아니거든요 유정인 검사님. 뭐랄까...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 음... 아! 그래요 수단! 그런거죠. 그러니까 유정인검사님? 그냥 밥 자알 먹으면서 기다려주면 돼요. 알겠죠?"
남자는 싱긋 웃으며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돌아선다.
"왜!! 왜 난데? 니 목적에 하필 왜 내가 필요한건데!!"
절규에 가까운 정인의 외침에 남자는 낄낄거리며 소리내어 웃는다.
기분나쁘게 음산한 웃음소리가 차가운 시멘트 벽에 부딪혀 방안을 채운다.
배를 잡고 숨이 넘어갈듯 웃던 남자가 오른손 검지를 세워 제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돌아보는 남자는 입가에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음산한 미소를 띄우고 있다.
"하하하.. 하아.. 아, 웃어서 미안해요. 근데 내가 아직 말안했나요? 당신이 누구때문에 여기 갇혀 있는지 "
"무슨소리야?!"
"이런.. 이런.. 내가 정말 깜빡하고 있었네요"
뚫어질듯 노려보는 정인의 시선에도 남자는 빙글빙글 웃고 있다.
"말 하려거든 제대로 해. 빙빙 돌리지 말고"
"크큭. 그래요 알려주죠. 뭐.. 말보다는 직접 보는쪽이 낫겠죠?"
남자는 천천히 상의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찾는듯 익숙한 손놀림으로 휴대폰을 조작한다.
"여기 있네."
남자가 느릿느릿 정인의 앞으로 걸어와 휴대폰을 내민다.
정인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남자로부터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직접 확인해봐요. 당신이 왜 여기 있는지"
정인은 비릿한 남자의 웃음에 욕지기가 날것 같아 힘겹게 침을 삼켰다.
남자가 손가락으로 정인이 들고 있는 휴대폰 화면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저장되어 있던 동영상이 재생된다.
지금 정인이 있는곳과 비슷한 회색의 시멘트벽으로 둘러쌓인 방의 한가운데..
침대에 묶인채 누워있는 연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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