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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L'amant/Bloody

태연정인 - 늦어서 미안해 20

 

 

***

 

 

 

 

좁은 골목길을 따라 쫓고 쫓기는 추격이 계속 된다.

 

차를 타고 골목의 반대편으로 갔던 순범은 놈이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는 통에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남자는 이 동네를 무척 잘 알고 있는듯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 사이사이로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하지만 놈도 인간인지라 쉼 없이 따라붙는 태연의 추격에 지칠대로 지쳐보인다.

 

쫓고 쫓기기를 얼마나 했을까.. 놈은 막다른 골목에서 어느집의 담을 넘으려다 숨이 가쁜지 허리를 숙이고 몰아치는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태연이 골목을 따라 길게 뻗은 낮은 담장 위를 소리도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다.

 

마침내 놈의 지척까지 다가온 태연이 숨을 고르고 있는 남자를 덮친다.

 

생각지 못한 태연의 급습에 놈이 주먹을 휘둘러 보지만 어렵지 않게 그의 주먹을 다 피해버리는 태연이다. 게다가 그닥 힘도 들이지

않는것처럼 보임에도 손날로 제 몸의 곳곳을 가격해오는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결국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채

제압당하고 마는 남자.

 

태연은 한쪽 무릎으로 놈의 등을 누르고 수갑을 채우며 한손으로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순범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순범과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 아무래도 이리저리 놈과 태연을 찾아 많이도 뛰어다닌 모양이다.

 

순범이 남자의 소매를 휙 잡아당겨 뒷통수를 퍽! 때린다.

남자가 뭐라 욕설을 뱉자, 순범이 다시한번 놈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이 쟈식이! 어디서 욕질이야? 야, 태연아 이자식이 너한테 주먹질은 안했냐? 확! 폭행죄까지 추가되야 정신 차리지?"

 


 
 

**

 

 

 

검찰청 취조실. 태연이 아까의 남자와 마주앉아 있다.

 

"김문후 어디있지?"

 

"김문후? 그게 누군데?"

 

태연이 놈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명함이며 전단지들을 펼치며 그를 노려본다.

 

"몰라? 기억력이 나쁜가보군.. 출장안마 전문, 여성고객 우대라.. 네가 중간에서 김문후한테 여자들 연결해줬을텐데 잊었나?

거기다 약도 취급하는걸로 아는데 어때? 지금 네 놈 사무실이며 집까지 이잡듯 뒤지고 있으니까 발뺌은 이쯤에서 그만두는게 좋을거야.

요즘도 김문후랑 거래하는거 알고 있으니까 순순히 말해. 어딨어? 김문후."

 

태연은 나른한 표정으로 놈의 대답을 기다린다.

 

남자가 뭐라 욕설을 내뱉는다.

 

"김문후 그 새끼는 왜 나까지 이꼴을 만드는거야! 썅! 대체 그 새끼가 무슨짓을 했는데 이러슈?"

 

태연이 특유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본다.

 

"그건 알거 없고. 김문후 어디있는지 알아 몰라?"

 

"아니... 어,어디있는지는 나도 자,잘.. 하지만 부르면 올겁니다.. 내가 부,부르면.."

 

더듬대는 남자의 목소리는 잔뜩 주눅들어 있었고.. 그것은 태연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이 어느정도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

 

 

 

대체 이렇게나 후미진 곳에 있어서야 제대로 장사나 될까 싶은 PC방의 두꺼운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오래된건물 특유의 퀘퀘한

공기속에 섞여 음식냄새며 ,잔뜩 찌든 담배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별로 크지 않은 PC방.. 타들어가는 담배를 물고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갈듯 집중하고 있는 서넛의 남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리는

비어있다.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가장 구석진 자리에 남자를 앉힌다.

 

"쓸데없는 생각은 안하는게 좋아. 알고있겠지? 제대로 하라구"

 

태연이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속삭이듯 말하고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로 가 입구를 등지고 앉는다.

 

이곳에 오기 전.. 남자는 어떤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김문후가 적어도 이틀에 한번꼴로 게시판을 확인하고, 올려진 글에 따라 약을 구하러 이곳으로 올거라는 남자의 말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믿고 기다려 보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곳에 온지 벌써 두어시간 쯤 지나고 있다..

 

태연과 순범이 오기 한참 전에 먼저 도착해 이곳 카운터에 알바생으로 위장하고 앉아있는 동만과 시선을 주고 받는다.

동만은 제 노트북을 켜두고 사이트에 올려진 글이 조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글을 읽는 이가 누구든 반드시 아이피를 추적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불태우면서 말이다.

 

동만이 고개를 젓는다 . 아직 남자가 올린 글을 조회한 이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태연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입구쪽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순범 역시 동만의 고갯짓을 보고 낮게 욕설을 뱉는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카운터에 앉아있던 동만이 벌떡 일어선다. 그가 갑작스레 일어나는 바람에 뒤로 밀린 의자가 내는, 듣기 싫은 소음이 어두컴컴한 PC방안에 울린다.

 

태연과 순범의 시선 뿐 아니라 다른이들의 시선까지 한몸에 받게된 동만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른 다시 자리에 앉는다.

 

곧 태연과 순범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인 동만.

 

순범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로 가더니 놈의 뒷통수를 한번 퍽 소리 나도록 치고는 잘해라! 한마딜 던지고 밖으로 나간다.

 

글을 읽은것이 김문후이고 그가 이곳에 나타나기를 바라며.. 태연과 순범, 동만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림이라는 고된 작업을 하고 있다.

 

경찰에 협조를 구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혹시라도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다는걸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김문후.. 그자는 흔적도 없이 종적을 감출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 이들 세사람이 의지할 곳은 서로뿐이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순범이 나간 뒤로 절대 움직이지 않던 PC방의 두터운 유리문이 흔들린다.

 

김문후.. 그가 PC방 안을 둘러본다.

 

앉아있던 남자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자, 김문후가 쓰고 있던 모자를 더 깊숙히 누르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왜 이렇게 늦었냐? 그냥 갈까 하던 중이다."

 

"잔소리 하지 말고 물건이나 내놔."

 

뭐가 그리 급하냐고 말을 돌리는 남자에게 김문후가 잔뜩 짜증섞인 말투로 재촉한다.

 

모자를 눌러쓴, 이 남자가 기다리던 김문후 라는것을 확인한 태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김문후는 본능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라도 한건지 고개를 들어 일어서는 태연을 바라보고...

 

돌아선 태연의 얼굴을 알아본 김문후는 남자를 향해 욕설을 뱉으며 후다닥 문쪽으로 뛰어간다.

 

그를 쫓는 태연의 걸음은 느긋하기만 한데도 김문후는 허둥대느라 문 손잡이 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헛손질을 하고 있다.

 

미끄러진 손을 들어 다시금 문의 손잡이를 잡아채듯 열고 밖으로 튀어 나가려고 하지만..

김문후는 문을 막고 있는 순범의 투박한 몸에 부딪히며 뒤로 나자빠지고 만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듯 널부러진 김문후를 향해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짓는 순범.

 

"어이쿠,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근데,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려고? 어?"

 

곧 순범은 표정을 바꾸고 쓰러진 남자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수갑을 채운다.

김문후는 순범과 태연을 번갈아 보더니 짜증스런 말투로 또한번 욕설을 뱉는다.

 

김문후를 이곳까지 유인하는데 협조한 남자가 쪼르르 달려와 태연의 옆에 선다.

 

"이제 저는 가도 되는거죠?"

 

뻔뻔한 얼굴로 실실 웃으며 묻는 남자.

 

"가긴 어딜가? 그 사이트에 대해서도, 당신 집이며 사무실에서 나온 약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셔야지. 안그래?"

 

태연은 남자의 팔을 꺾어 수갑을 채우며 동만을 부른다.

 

"최동만. 그 사이트 지금 당장 폐쇄해"

 

동만이 네! 하고 대답하며 엔터키를 가법게 누르자, 남자가 글을 올려둔 (그러니까 온갖 추잡한 곳에 쓰이는 마약이며 흥분제 따위를

거래하기 위한 일종의 연락책이 되는) 사이트는 더이상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닫혀버린다.

 

 

 

 

 

검찰청 취조실에 김문후가 앉아있다.

 

유리 너머 방에는 순범과 태연이 있다.. 곧 취조실의 문이 열리고.. 재하가 안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