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정인 조각 - 여름2
여름2
Written by Angelique(carna)
"어? 비온다! "
내리 열흘이 넘도록 폭염이 계속 되는통에 건물 밖으로 발을 내딧기도 겁이 났었는데
갑자기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에 속이 다 후련하다.
정인이 비온다고 소리치며 창가로 달려가 창문밖으로 손을 내밀어 빗물에 손을 적신다.
"어우! 오늘 비온단 소리 있었냐?"
순범이 젖어버린 옷이며 머리를 손으로 털면서 사무실로 들어온다.
"헐~ 황형사님 쫄딱 젖으셨네요. 아 거기서 그렇게 터시면 어떡해요! 수건 갖다 드릴께요 수건!
아 진짜 털지 마시라니까요~~"
동만이 잔소리를 해대며 탕비실로 뛰어들어가 수건을 가져다 순범에게 건넨다.
정인이 티격태격하는 두사람을 보며 빙긋 웃음짓고 있다.
태연은 제 사무실에 앉아 그런 정인을 보며 미소짓는다.
제게 닿는 시선을 느낀건지 정인이 홱 고개를 돌려 태연의 사무실을 보자
여탕 훔쳐보다 들킨 남학생마냥 놀라 후다닥 서류철로 얼굴을 가린다.
서류철에 얼굴을 묻고 있던 태연이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든다.
문앞에 선 정인을 보고 괜히 뜨끔해서는 태연이 헛기침을 한다.
"흠흠.. 들어와"
정인이 쪼르르 책상앞으로 와서 서더니 뒤에 감추고 있던 커피를 내민다.
"뭐야?"
"아이스커피요"
"너 마셔"
"제껀 있어요. 이건 민검사님꺼요! 안마셔도 괜찮으니까 받으세요. 후덥지근 하잖아요.
안드실꺼면 들고라도 계세요. 시원해요 헤헤"
아이처럼 웃으며 내미는 커피를 안받을 수 없어, 저도 따라 피식 웃으며 커피를 받아드는 태연.
"저기.. 민검사님 .."
"왜?"
"우산 가져오셨어요?"
"가져왔어"
"아.. 그래요?.. "
"왜그러는데?"
"아..아니에요. 그럼 나가볼께요."
뭔가 할말이 있는것 같은데 말도 못하고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가는 정인의 뒷모습에
태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얼음 다 녹겠네~ 유검. 이거 안마셔요? 유검이 사다달래서 내가 비까지 맞으면서 사온건데?"
"마셔요 마셔~ 다음에 비오는날 제가 비맞으면서 커피 심부름 합니다~ 됐죠?"
정인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순범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친다.
"유검사님! 그런건 제가 해요! 그래도 유검사님도 여잔데 비맞고 다니시면 안돼죠!"
괜히 동만이 혼자 심각해져서는 제법 진지하게 말한다.
벙찐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던 정인이 먼저 까르르 소리내며 웃고, 순범도 껄껄대며 따라 웃는다.
동만은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되는지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두사람을 번갈아 보고있다.
**
"와... 시원하게도 내리네.. 더위도 한풀 꺾이려나?"
아이스커피에 꽂힌 빨대가 빙그르 돌아가는 바람에 정인이 빨대를 따라 얼굴을 돌리고,
동만이 킥킥거리며 빨대를 손으로 잡아 정인의 입에 물려준다.
"그러려나요? 정말 시원하게도 쏟아붓네요. 근데 유검사님 우산은 가져오셨어요?"
동만의 물음에 정인이 한껏 불쌍한 표정이 되어서 고개를 도리질한다.
"차는요? 차는 가져오셨어요?"
정인은 여전히 불쌍한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젓는다.
"저런.. 그럼 제가 태워다 드려요? 비 안그치면?"
"오올~ 똥만! 철들었다 너? 그래주면 나야 좋지. "
동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똥만~ 니 고물차 가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서는건 아니지?"
"고물차라뇨 그래도 아직 멀쩡하거든요."
동만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서운한듯 말하자 정인이 웃으며 동만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알았어 알았어 농담농담. 잘 부탁드려요~ 최기사님~"
저쪽에서 불타는 시선을 보내는 누군가를 알고는 있는건지.. 정인과 동만이 오늘따라 다정하다.
***
시간이 흐르고 역시나 퇴근시간이 되어서도 비는 그치지 않는다.
순범은 아까 나가더니 어디서 빌려왔는지 우산을 하나 들고 들어와서는 의기양양이다.
태연도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온다.
"퇴근하지"
퇴근이란 말에 순범이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황형사님 숙자씨라도 만난거에요? 왜 저렇게 급한거에요?"
정인의 말에 태연이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유정인. 우산.."
태연이 정인에게 우산 있냐고 물으려고 입을 떼는데 동만이 우산을 들고 신나서 정인의 팔짱을 낀다.
"가요 유검사님. 최기사가 잘 모셔다 드릴테니까~"
"고맙다 똥만! 역시 너밖에 없다 흑.."
정인이 슬쩍 태연에게 눈을 흘기며 말하고 동만과 함께 사무실을 나간다.
태연은 뭔가 심기가 불편해져서 두사람의 뒤를 따라나간다.
**
건물입구.
"제가 차 가지고 올께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동만이 정인을 향해 말하며 우산을 펴들고 주차장으로 달려간다.
"민검사님은 차 어디에 두셧어요?"
정인이 아까부터 뒤에 서있는 태연이 신경쓰이는지 몇번 흘끔거리다 어색함에 먼저 말을건다.
"신경쓸거 없어"
"아니 신경쓰는게 아니구요., 아니 근데 왜 여기 계시는데요?!"
정인이 무안함에 꽥 소리를 지르지만 태연은 듣는둥 마는둥 내리는 빗줄기만 보고 있다.
"유검사님~~"
그때 차를 가지고 온 동만이 차안에서 정인을 부르고, 정인은 태연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동만의 차에 타기위해 계단을 내려선다.
정인이 차문을 열기위해 문손잡이를 잡을때였다.
누군가 정인의 뒷덜미를 잡아 올리는 바람에 질질 끌리다시피 뒷걸음질로 계단을 올라가는 정인.
"누구야!!"
꽥 소리치며 돌아보자 태연이 목덜미를 잡고있다.
"무..뭐뭐하시는거에요?"
"최동만. 유정인은 내가 데려다줄테니까 넌 그만가봐"
차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동만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태연의 싸늘한 "그만가봐"에
주눅이 잔뜩 들어서는 얼른 차를 출발시킨다.
"이..일단 이것 좀 놓고 말씀하실래요?"
정인의 말에 태연은 그제야 제가 아직 정인의 뒷목덜미를 잡고 있는걸 깨닫고 얼른 놔준다.
"아니, 왜 그러시는건데요? 뭐 시키실 일 있으세요?"
정인이 허리에 손까지 올리고 씩씩거리며 말하지만, 태연은 그런 정인의 모습이 귀여워보여 피식 웃어버린다.
"뭐예요? 지금 제말이 우스우세요?"
"됐고, 가지"
질문은 다 꿀꺽 해버리고는 다짜고짜 팔을잡아 제 팔에 끼워넣는 태연의 행동에 정인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금붕어마냥 뻐끔거리기만 하고있다.
"왜? 최동만이랑은 팔짱 잘 끼던데?"
"네? 아..아니 지금 그..그게"
"앞으론 기사가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괜히 어린놈 마음 설레게 하지말고"
이게 무슨말인거지?.. 아니 누가 마음이 설레? 동만이가? 에이 그게 아니지, 이냥반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리고 이건 지금 무슨 시츄에이션이냐고? 서..설마 지..질투? 아니지아니야 그럴리가 없는데..
정인은 머리속으로 가능한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느라 정신이 없다.
"뭐해?"
"에~에? 아.. 아니 "
"그만 더듬고 빨리 타"
어느새 태연의 차앞에 와있는 저를 발견한 정인은 아무말도 못하고 태연이 시키는대로 얌전히 차에 오른다.
아직도 태연의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려 머리를 굴리느라 정인은 태연이 제게 안전벨트를 해주는것도 모르고
눈을 껌뻑이고 있다.
태연이 그런 정인을 가만히 보다가 도저히 못참겠다는듯 입술에 가볍게 쪽 소리 나도록 입을 맞춘다.
정인은 화들짝 놀라며 제 입술을 손으로 가리고 태연을 빤히 쳐다본다.
"차비 미리 받은거니까 그렇게 놀랄거 없어. 저녁 먹고 갈래?"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무래도 최동만 이녀석 자리를 정인에게서 멀리 떼놔야겠다고 생각하는 태연과
얼이 빠진듯 멍~한 표정으로도 태연의 저녁초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래도 내일은 동만이한테 점심이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정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