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y L'amant/Bloody

태연정인 - 이유(理由) 5

Carna 2013. 12. 31. 20:46

 

***

 

 

 

방금 활짝 핀 꽃처럼 생글거리며 들어오던 정인과는 달리 뒤이어 들어오는 태연의 얼굴엔 잔뜩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런 태연의 눈과 마주친 정인은 방금까지 생글거리던 달뜬 마음이 미안해져 금새 시무룩해져 버리고 말았다.

 

눈이 마주치고나자 더더욱 주차장에서 보았던 날아갈듯 가볍던 정인의 발걸음이 떠올라 가슴이 지릿해져온다.

태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답지 않게 축처진 어깨를 추스르지도 못한채 집무실로 들어가버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정인이 그의 늘어뜨린 어깨가 더이상 보이지 않자 울듯이 우겨진 얼굴로

낮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한참을 고개만 갸웃거리며 태연과 정인을 바라보던 순범이 저도 따라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서

동만을 손짓해 부른다.

쪼르르 다람쥐마냥 달려와 제 앞에 선 동만에게 정인에게 들릴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커피심부름을 시킨다.

 

"가서 커피 좀 사와라. 유검이 잘 마시는 그 뭐냐..  모카.. "

 

"카페모카요?"

 

"어! 그래 그거랑 너 마시고싶은거 하나 사고, 나는 아이스커피 하나. 알았지? 조용히 하고 얼른 다녀와"

 

속삭이는 순범을 이상하단 눈초리로 쳐다보던 동만이 몇번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비싼거 마셔도 된다는 확답을 받은뒤 

사무실을 나간다.

동만의 뒷통수가 모퉁이를 돌고나자 순범이 자리에서 일어서 정인의 책상앞에 선다.

 

"유검.."

 

"네?" 하고 놀란듯 고개를 든 정인의 눈동자가 촉촉히 젖어있다.

 

"혹시.. 태연이랑 무슨일 있어요?"

 

"네? 무슨일요?.. "

 

"아니...  두사람 요 몇일 분위기가 좀 그런거 같아서 말이지.. 태연인 태연이대로 유검한테 뭔 할말이 있는거 같은데

못하는 눈치고.. 유검은 유검대로 기분 좋다가도 태연이만 보면 시무룩해지고 .. 다른게 아니라 그저.. 걱정이 되서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제가 하윤을 향해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게 되고 난 후부터 태연은 자꾸만 무슨 할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정인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때마다 눈이 마주치면 재빨리 시선을 돌려버리는 그의 모습에 정인은 또 정인 나름대로 

마음이 상하곤 했는데... 정말.. 뭐였을까...

 

"아뇨... 아무일 없어요..."

 

뭔가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오늘은 기어이 무슨일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 의지를 다진 순범인지라.. 정인의 아무일 없다는 

대답에 기운이 빠진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

 

순범이 한동안 머뭇거리다 자리로 돌아간다.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으려던 순범이 아무래도 안되겠던지 정인의 눈치를 살피며

태연의 집무실로 걸음을 뗀다.

 

가벼운 노크소리가 들리자마자 벌컥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태연이 미간을 좁힌다.

 

"뭐? 왜?  노크했다"

 

"무슨일이야?"

 

시선은 책상위 서류들에 둔채 순범의 대답을 기다리던 태연이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탓에 고개를 들어 순범을 올려다본다.

제 책상앞에 서 시선 둘곳을 찾지 못한채 주저주저 몇번이나 입술을 떼었다 이내 다시 다물어버리는 그의 모습에 태연의 눈빛이

의아함으로 물든다.

곧 책상위 서류철을 덮고 가슴앞으로 팔짱을 끼며 의자 깊숙히 몸을 기댄 태연이 아무말 없이 그런 순범을 보고만 있다.

 

찌르는듯한 태연의 시선에 순범이 움찔거리며 "야.. 태연아..." 하고 입을 연다.

 

"너 유검이랑 무슨일 있냐? 무조건 아무일 없다고 하지말고, 너 지난주 내내 뭔 할말 있는 사람모냥 유검 주위를 뱅~뱅 도는데 

내가 숨이 다 막힌다. 대체 무슨일인거야?"

 

"별일 아니야. 신경쓰지마"

 

"야 태연아. 너 진짜 서운하게 그럴래? 그러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해봐라. 아주 너랑 유검 보고 있자니 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거 같단 말이다. 어?"

 

저렇게 저를 채근하는게 다 저를 걱정해서 그러는거란걸 알고 있다. 

더는 아무일 아니란 말로는 진정될것 같지 않아 태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일으킨다.

 

"형.. 요즘 유정인이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 좀 달라진거 같지않아?"

 

"유검? 글쎄?.. 뭐 요즘 생글생글 잘 웃고 다니긴 하더라만.. 동만이한테 신경질도 좀 덜 내는것 같고.. 왜? "

 

"전에. 2주 전쯤 형이 유정인한테 남자가 생긴거 같다고 했었잖아.. "

 

"뭐야! 진짜 유검 남자 생긴거냐? 너 완전히 물먹은거야? 유검 아주 물건너 간거야? 어? "

 

태연이 미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화들짝 놀라며 순범이 호들갑을 떤다.

 

"잘은 모르겠어.. 분위기도 좀 달라졌고.. 오늘 아침에 보니까 누구랑 문자를 주고받는것 같았는데.. 무척.. .. 

즐거워 보인달까.. 행복해 보인달까.. "

 

잔뜩 풀죽은 태연의 모습이 안타까워 주먹을 쥐락펴락 하던 순범이 책상을 탁! 소리나게 치고는 태연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태연아! 일단 기다려봐라. 내가 확실히 알아볼테니까 미리부터 기운빠지게 그러지 말고. 아니, 아니지?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너 그렇게 기죽을거 없다?. 니가 유검 생각하는 마음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거 내가 아는데

무슨 걱정이냐. 그럼,그럼 그렇지! 내가 오늘내로 알아봐 줄테니까. 너 아~무 걱정말고 기다려"

 

태연이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순범은 제 가슴팍을 탁탁 두드리며 저만 믿으라는 말만 반복하고는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괜한 소리를 한것 같아 태연은 좀전보다 더 속이 타들어간다.

 

 

순범이 집무실을 나오는데 딱 맞춰 동만이 커피를 사들고 들어온다.

 

"자~ 이건 유검사님 좋아하시는 카페모카. 황형사님이 쏘시는거에요 헤헤"

 

"어? 아.. 잘 마실게요 황형사님"

 

"아 뭐 별것도 아닌걸. 하하.. 저.. 유검. 오늘 날씨도 좋은데 우리 잠깐 바람 좀 쐬고 올래요?"

 

갑작스런 순범의 말에 정인이 커피를 들고 살짝 굳어진다.

곧 '그러죠 뭐 ' 하고는 애써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정인이다.

 

순범과 정인은 각자 커피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무슨일이세요? 갑자기..."

 

불안한듯 순범의 눈치를 살피는 정인에게 순범이 특유의 너털 웃음을 웃으며 안심하라 말한다.

 

"뭘 그렇게 불안해하고 그래요 유검. 별일 아니니까 떨지 말아요 하하하"

 

어색한 웃음이 정인의 입가에 걸리지만 그 눈은 여전히 불안하다 말하고 있다.

 

"유검. 요즘 연애해요?"

 

"네? "

 

웃음기 지워진 순범의 질문에 정인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요즘 유검 분위기가 변했길래.. 평소보다 더 잘웃고 기분도 좋아보이고 해서 말이에요. 누구 좋은사람 생겼어요?"

 

당황하는 정인의 모습에 이번엔 순범이 다시 웃으며 묻는다.

 

"왜.. 그런걸 물으세요?.. "

 

"왜.. 라기 보다는.. 궁굼하기도 하고.. 아휴.. 그냥 말할게요. 나는 유검이 태연일 좋아하는줄 알았거든.. 그런데

요즘 두사람 사이도 서먹하고, 유검은 뭐 좋은일 있는거 같은데 태연인 매일이 울상이고.. 그러다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유검보다 태연일 먼저 알았잖아요. 걱정이 되는거지..뭐... 하지만 유검이 좋은사람 생겨서 행복하다면 난 

기쁜맘으로 축하해줄테니까 걱정말아요."

 

순범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정인은 쉽사리 뭐라 말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머릿속 생각이 뒤엉켜 두리뭉실 한덩어리가 된 기분이다. 

 

'무슨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좋을까.. 민검사님을 좋아한다는걸 황형사님이 알고 있다면.. 혹시 그도 알고 있는걸까?..아니..

지금은 그런걸 생각할 때가 아니겠지.. 그럼 난.. 정말 하윤씨와 연애를 하는걸까?.. 아니면 그저 위로받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민검사님은 어째서 기분이 안좋은걸까? 나때문에?.. 어째서?...'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통에 그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지경이 되어버렸을때.. 순범이 정인을 부른다.

 

"유검?.."

 

생각을 멈추지 못한채 정인이 고개를 들자 놀란 순범의 눈길이 저를 향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눈가를 가득메운 물기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또르르 떨어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