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y L'amant/Bloody

태연정인 - 이유(理由) 4

Carna 2013. 12. 31. 20:44

 

***

 

 

 

하윤을 소개받고 2주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 2주동안 아니, 오늘까지도 하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정인의 마음을 얻기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것은 어쩌면 효과가 있는듯했다.

매일 아침,점심으로 문자를 받고, 답장을 보내고... 텅빈 집에 돌아와 외로움을 느낄쯤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것이 이젠 정인에게도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시간은 밤11시를 지나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인은 잠을 이루지 못한채 침대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사건파일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보니 뒷목이 뻐근하게 아파와 그제야 고개를 든 정인이 시간을 확인하기위해 침대옆 협탁에 놓인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다.

 

때마침 울리는 문자 알림음에 정인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구지?..."

 

- 정인씨 자요?..

 

하윤으로부터 도착한 문자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 아직 안자요

 

문자를 보내고.. 정인은 휴대폰을 손에 든채 그의 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곧 문자알림음 대신 하윤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 안자고 뭐했어요? 혹시.. 내가 깨운건 아니에요?

 

- 아뇨, 정말 안자고 있었어요. 그냥.. 잠이 안와서요.. 근데 어쩐일이세요?

 

- 그게.. 나 정말 정인씨한테 제대로 반했나봐요.

 

오그라드는 말인데.. 평소같으면 잔뜩 찡그린채 핀잔을 줬을텐데.. 어째선지 정인은 그저 웃음이 난다.

 

- 희주가 들었으면 또 한소리 하겠네요

 

- 하하 그렇겠죠? 자려고 누웠는데 정인씨 얼굴이 아른거려서 잠이 와야 말이죠. 나 지금 정인씨 집앞이에요.. 

  그냥.. 보고싶어서..

 

- 네? 어,어디요? 어디라구요?

 

- 정인씨 집앞이요. 나도 모르게 와버렸어요. 

 

왜일까.. 그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고.. 집앞에 와있다는 말에 가슴이 뛴다.

 

- 자,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요.

 

정인은 벌떡 일어나 거울을 본다. 지난주 내내 일에 치여 피곤했던 탓에 얼굴이 엉망인데.. 

중얼거리면서도 정인은 의자에 걸쳐둔 가디건을 집어들고 현관으로 향한다.

 

 

==

 

 

"이런.. 나올 필요까진 없는데.. "

 

미안한듯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하윤을 보며 정인은 피식 웃는다.

 

"보고싶어서 왔다면서요."

 

"그야 ..그렇지만.. 목소리 들었으니 그냥 가려고 했거든요."

 

"저쪽에 잠깐 앉을까요?"

 

화단앞 벤치를 가리키며 말하자 하윤이 먼저 달려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깔아준다.

 

"앉아요. 여기"

 

남자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본적이.. 있었나 싶다.. 

 

"참.. 이상해요"

 

하윤의 손수건위에 앉으며 말하는 정인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있다.

 

"뭐가요?"

 

"하윤씨랑 있으면.. 뭔가 굉장히.. 따뜻해요. 자꾸.. 날 풀어지게 만들어요. 저 원래 그렇지 못하거든요. 낯도 많이 가리고.. 

누구한테 쉽게 마음도 못열고.. 경계심만 가득해서..누구든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다가도 도망가게 만들거든요"

 

하윤은 조용히 웃음띤 얼굴로 정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하윤씨는.. 왜 저한테 그렇게 잘해주세요? 전 별로 매력도 없는데.. 자꾸 반했다고 하시고.. 처음엔 놀리는거 같았었는데.."

 

"지금도 놀리는거 같아요?"

 

가만히 고개를 젓는 정인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뽀얗게 빛난다.

 

"나도 처음이에요. 믿을지 모르지만.. 누구한테 그렇게 한눈에 그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 만나고싶다 생각한건... 처음 

그 레스토랑에서 정인씰 봤을때 말을 걸어야 하나 .. 그랬다가 미친놈 취급 당하면 어쩌나 머리터지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희주가 들어오다 정인씨한테 아는척을 하는거에요. 그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상상도 못할걸요? 하하"

 

지금까지 누가 자신에게 이토록 따스하게 대해준적이 있던가?.. 지금의 설레임은 태연에 대한 감정과는 사뭇 다르다. 

이것이 사랑인지.. 호기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다. 

그럼에도 정인은 지금의 제 감정이 태연에게 죄를 짓는듯 가슴 한켠이 아프게 저려오는걸 느낀다.

 

 

 

 

*** 

 

 

- 잠은 좀 잤어요? 피곤하지 않아요? 아침은 먹었어요? 이런.. 아침부터 잔소리만 늘어놓네요. 

 

이제 막 검찰청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정인이 하윤의 문자를 보며 미소짓는다.

 

- 푹 잘 잤어요. 하윤씨야 말로 별로 못잤겠어요. 피곤하지 않아요?

 

- 난 정인씨 얼굴 보고 온 덕에 아주 잘 잤어요. 고마워요~

 

- 고맙긴요.. 제가 고맙죠.. 

 

-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아요. 점심시간에 연락할게요.

 

- 네..

 

차에 기대어 기분 좋은 미소가 걸린 얼굴로 하윤과 문자를 주고받은 정인이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가벼운 걸음을 옮긴다.

제가 문자를 보내는 모습을 저만치 서서 내도록 지켜보던 태연의 시선은 알지 못한채..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제 막 내리려던 태연은 제 차앞을 지나는 흰색의 포드 포커스를 발견하곤 싱긋 웃음짓는다.

정인이 주차를 끝낼때까지 기다리던 태연이 그녀가 차문을 열고 나오자 자신도 차에서 내린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길거라 생각했던것과 달리 정인은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더니 정인은 차에 기대선채 열심히 문자를 보낸다. 그것도 굉장히 즐거운 표정으로...

 

정인의 표정은... 마치...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녀와도 같아 보인다...

 

알 수 없는 불안한 기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정인의 모습이..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녀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낯설다.... 정인은 지금..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대체 상대가 누구길래 저토록 행복해 보이는걸까..

온갖 추측과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태연의 생각과 마음을 좀먹고 있었다.

 

정인이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탈때까지도 태연은 그자리에 못박힌채 멍하니 서있다.

이미 한번 죽어버린 몸뚱이에 남아있던 일말의 영혼마저 잃어버린 기분이다.

태연은 차문을 열고 다시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댔다. 

 

"유정인... 정인아.. 뭐가.. 대체 누가 널 그렇게 변하게 한거니.. 이젠.. 정말.. 보내줘야 하는거니..."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혼잣말이 아프게 가슴을 때린다..

문득... 울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