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y L'amant/Bloody

태연정인. 사랑..그 잔인한 이름 3

Carna 2013. 12. 31. 22:02

 

***

 

 

 

검찰청 지하주차장에 조심스럽게 차를 세우고 태연은 행여 소리라도 날까 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몸을 돌려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는 정인의 뽀얀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새근거리며 고른 숨을 내쉬는 정인의 얼굴에 피곤함이 서려있어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그녀의 잠든 모습은 너무 벅찬 나머지 가슴이 욱신거릴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래.. 나는 이 여자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제 마음에 태연은 조용히 숨을 삼켰다.

 

벅차오르는 마음만큼이나.. 정인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만큼이나.. 가슴 한켠을 무겁게 짓누르는 불안함에 태연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어느새 힘이 들어간 주먹을 내려다보며 부디 이 불안한 생각이 그저 생각만으로 끝나기를 빌었다.

 

 

"정인아.. "

 

소심하게 어깨를 흔드는 느낌과 부드러운 음성에 잠결에 정인이 뒤척였다.

뒤척이기만 할뿐.. 정인이 깨어날 기미도 보이질 않자 태연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에 지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깨를 흔들던 

제 손이 미안해지고.. 이미 출근시간을 넘겨버린 시계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그녀를 흔들어 깨우자니 도저히 손이 말을 듣질 않아 고심하고 있던 태연이 무슨 생각에선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조심스럽게 정인의 안전벨트를 풀어준 후 태연이 정인의 양쪽 어깨를 부서지는 무엇을 잡듯 살며시 그러쥐었다.

아직도 고른 숨을 내쉬며 잠속에서 헤메는 정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천천히 그녀의 얼굴위로 고개를 숙였다.

제 차가운 입술이 닿자 움찔 얼굴을 찡그리는 정인의 아랫입술을 살짝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입술을 잘근거리는 느낌에 한쪽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린 정인은 숨결이 얽히는 거리에 있는 태연의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라 두눈을

번쩍 떴다. 그의 얼굴에 얼핏 비치는 미소를 볼 틈도 없이 입술을 삼키는 부드러운 움직임에 정인은 두눈을 꾹 감아버렸다.

 

소중한 장난감을 다루듯 조금은 장난기 어린 움직임으로 그녀를 온통 점령하고 있던 태연의 입술이 촉~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정인은 아쉬워하는 스스로에게 놀라 얼굴을 붉히며 태연의 시선을 피했다.

 

"이제 잠 좀 깼어?"

 

"네? 네..."

 

뭐가 그리 좋은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태연이 차에서 내린다. 차를 돌아 조수석으로 오는동안 정인이 문을 열려고 하자 그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정인은 문손잡이를 잡았던 손을 살짝 내려 괜시리 가방만 만지작 거렸다. 

 

"진짜.. 어색해요.. 민검사님이 절 혼자서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여자 만들고 계신거 아세요?"

 

태연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던 정인이 차에서 내리며 투덜댄다.

잔뜩 볼멘소리를 하고는 빵빵하게 볼을 부풀리는 정인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태연이 그답지 않게 큰소리로 웃는다.

그가 이렇게 웃는걸 본적이 없는 정인의 볼에서 피시식 바람이 빠져버렸다.

 

"가자. 우리 지각이야"

 

웃음을 멈추지 못해 쿡쿡거리며 내미는 태연의 손위에 제손을 얹으며 정인은 긴장감도 걱정도 없이 푸흐흐 그를 따라 웃었다.

 

 

 

 

 

지각이라는 단어 자체와 거리가 멀던 태연이 그것도 정인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에 동만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랗게 떠졌다.

순범은 모두 다 안다는듯한 표정으로 두사람을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곧 그의 표정이 장난스럽게 변했다.

 

"어허~ 어떻게 둘이 같이와? 게다가 나란히 지각이라.. 뭔가 냄새가 나는데?"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푹 숙이는 정인의 모습에 순범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순범은 집무실로 들어가는 태연의 뒤를 덩치에 맞지않게 쫄래쫄래 따라들어가며 정인이 앉아있는 책상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거리며 태연의 집무실로 모습을 감추는 순범을 보며 정인은 왠지 잔뜩 긴장한채 마른침을 삼켰다.

 

 

 

"야아~ 태연아 너 오늘 아주 얼굴이 화악~ 폈다? 뭔 좋은일 있냐?"

 

다 알고 있다는듯 싱글거리는 순범이 왠지 늙은 너구리 같다고 생각하며 태연은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뭐가  알고싶은거야? "

 

"나?  에헤이~ 뭘 다 알면서 새삼스럽게 묻고 그러냐?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는 뭐 그런 식상한 얘기를 할건 아니지?"

 

태연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정인이 어제 차를 두고가서 아침에 데리러 갔었어"

 

"유검이 차를 두고가? 아니 왜?   혹시..  어제도 같이 퇴근했냐?  니차로?"

 

"형사밥 20년 촉은 제발 덕분에 사건해결에나 좀 쓰지그래?"

 

"야! 너 뭐냐?  진짜 유검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기라도 한거 같다? "

 

태연의 눈빛이 깊어지고 잠시 딴세상에라도 다녀온듯 표정이 바뀌며 기분좋은 웃음이 번진다.

 

"내가.. 진거지.. 유정인한테"

 

"오호라 ~ 야아 태연아 인마! 축하한다 쟈식아. 아후 그냥 내가 속이 다 후련하네. 잘했다 잘했어. 하하하"

 

"고마워.. 형 덕분이기도해."

 

"쟈식이 우리사이에 고맙긴. 정말 축하한다!  너한텐 유검이 딱이지!  잘 좀 해서 어떻게 국수도 먹여줄거냐?"

 

"글쎄.. 그럴 수 있을까?..."

 

시무룩해지는 태연의 표정이 안타까웠지만 부러 밝고 큰 목소리를 내는 순범이다.

 

"인마! 안될건 또 뭐냐? 하여튼 너는 자신감 부족이다. 그것도 병이다 병!  자신을 가져! 유검이 보통여자냐? 모르긴 몰라도

니가 결혼하자 한마디만 하면 유검은 바로 오케이 할껄? 그건 이 형님을 믿어도 좋다! 암 그렇지!"

 

어깨를 두드려주는 순범의 두툼한 손에 위안을 받으며 어쩐지 모두 다 그의 말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본다.

 

 

 

 

 

그 답지 않게 오전 내내 시계를 들여다보며 점심시간만 기다리던 태연이 시계바늘이 정오를 가리키기 무섭게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점심식사들 하고 오지?"

 

평소 '밥' 과는 거리가 먼 태연이 웬일로 점심시간을 챙기고 나오자 순범과 동만은 물론 정인까지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그나마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순범이 눈치껏 동만을 끌고 사무실을 나간다.

 

"어? 저,저도..."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애타는 눈길을 보내던 정인은 어느새 바로 뒤에 와서 선 태연의 손에 붙들렸다.

 

"어딜 가려고?"

 

눈을 깜빡이며 올려다보는 정인의 시선에 태연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걸렸다.

 

"저도  점심.. "

 

정인의 말은 듣는둥 마는둥 태연은 정인의 손목을 잡고 집무실로 들어가고, 영문도 모른채 태연에게 끌려 들어간 정인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이게 다 뭐에요?"

 

"점심"

 

테이블 위에 펼쳐진 다섯가지 도시락과 태연을 번갈아 보던 정인이 어이 없다는듯 한숨을 내쉰다.

30분 전쯤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더니 그게 이거였나보다...

 

"이걸 누가 다 먹으라고.."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 앉아"

 

뒷머리를 쓸며 쑥스러운듯 변명처럼 중얼거리던 태연이 정인의 어깨를 눌러 소파에 앉혔다.

 

"이렇게 많은데 황형사님이랑 동만이도 같이 먹어도 될걸 그랬어요.."

 

"그건 좋은생각이 아닌거 같은데?  "

 

"네? 왜요?"

 

정말 몰라서 묻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저러는건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태연이 고개를 저었다.

 

"난 유정인을 하루종일 내 옆에만 딱 붙여두고 싶은데, 그렇게는 못하니까 점심시간 만이라도 옆에 딱 붙여두고 싶어서 이러는거거든"

 

닭살돋는 소리는 절대 못할줄 알았던 그가 대놓고 저런소릴 하는걸 보니 놀랍기도, 부끄럽기도, 또.. 기쁘기도 해서 ..

정인의 입꼬리가 자꾸만 당겨 올라간다.

 

"흠흠..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 근데 대체 이건 언제 다 준비하신거에요?"

 

"내가 만든것도 아니고 사온건데 뭘.. "

 

"그럼 물어보기라도 하시죠. 저 혼자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괜히 ..황형이랑 동만이 눈치가 보여서.. 다음부턴 물어볼테니까 오늘은 그냥 먹고싶은 것만 먹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눈치를 왜 봐요? 사내연애 금지도 아니고, 우리가 뭐 불륜도 아닌데"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서 먹어. 안그래도 사온지 좀 지나서..  다 식었겠다. 자 어서"

 

태연이 웃으며 자꾸만 따지고 드는 정인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준다.

입술을 살짝 삐죽이고 못이기는척 밥을 떠 입안으로 넣은 정인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왜? 왜그래?  맛이 이상해?"

 

"아뇨.. 그냥... 좋아서요.. 민검사님이랑 이렇게 있는게 좋아서.. 그래서.."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인 정인의 눈동자에 태연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더 일찍 .. 더 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

 

"아니에요. 이렇게 지금 .. 다 해주시잖아요. 고마워요 민검사님.."

 

"고마울것도 많다.. 점심시간 다 지나겠다. 어서 먹어"

 

"네.."

 

정인의 수저위에 반찬을 올려주며 태연이 용기를 내었다.

 

 

"사랑해... 많이.."

 

 

정인은 차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채 꾸역꾸역 흰밥을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벅찬 제 마음을 그가 알아줄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