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y L'amant/Bloody

태연정인 - 늦어서 미안해 7

Carna 2013. 12. 31. 04:33

***

 

 

 


재하가 아까부터 몇번인가 노크를해도 대답이 없는 정인의 방문을 연다.

 

헤드폰을 쓰고 창가에 앉아있는 정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톡 두드리자 그제야 고개를 들고 저를 보는 정인의 동그란 눈이 오늘따라 정말

예쁘기도하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정인에 대한 마음이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생각을 하며..재하가 귀를 가리킨다.

 

정인이 헤드폰을 빼서 책상위에 올려두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킥킥거린다.

 

"나 내가 헤드폰 쓰고 있는걸 생각못하고 오빠가 왜 말을 안하고 뻐끔거리나 했어"

 

제가 한 행동이 우스운지 한참을 소리내며 배까지 잡고 웃는다.

 

그 모습 또한 재하의 눈엔 왜 또 그리 귀엽고 예쁘게 보이는지..

재하는 정인에게서 고개를 돌려 낮은 한숨을 뱉어낸다.

 

알고있다.. 이 마음이.. 정인을 향한 이 마음이 저를 망치게 될수도 있다는것을..


"왜? 무슨일이야?"

 

한참을 웃다가 이제야 생각난듯 용건을 물어오는 정인에게 재하가 손에 들고있던 서류봉투를 건넨다

 

"뭐야?"

 

"열어봐"

 

정인이 무릎위에서 서류봉투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몇장의 종이들을 꺼내 읽는다.

 

"정말이야? "

 

"그럼 내가 위조라도 해왔을까봐?"

 

재하의 말에 정인이 또다시 까르르 웃는다.

 

"아니, 뜬금없이 무슨 위조, ㅋㅋ 그럼 이제 뭐라고 불러? 교수님? 박사님? 선생님?"

 

"됐다. 난 너같이 다 늙은 학생 둔적 없거든?"

 

"와~ 이제 나 늙었다고 구박하는거야?"

 

"아무튼 한마디도 안지지?"

 

재하가 웃으며 정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건 그렇구, 오빠 제대로 일해보고 싶다더니.. 왜 학교로 가는거야?.."

 

"그냥.. 어차피 지들이 필요하면 찾아올텐데. 내가 먼저 일시켜달라고 가는거 자존심 상하잖아"

 

제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재하의 손을 잡아 당기는 정인.

 

"오빠.. 나때문에 오빠가 하고싶은 일까지 희생할 필요 없어. 오빠가 경찰이나 검찰에서 일한다고해서 내가 그사람이랑 꼭 마주치란 법은 없잖아? ...  

그리고.. 어차피 만나야할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피해도 결국 만나지게 되는거.. 나도 알아..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더이상 피하지 않을래.."

 

"유정인씨 뭔가 착각하나본데, 내가 학교를 선택한건 그쪽 때문이 아니거든요."

 

"아니면 다행이구.. 무튼 축하해~  이재하교수님~"

 

"고맙다. 근데 넌 일하고싶지 않아?"

 

"하고는 싶지.. "

 

재하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럼.. 차라리 미국으로 돌아가는게 좋지 않겠어? 거기서라면 .."

 

"아냐.. 이제 아빠 나이도 그렇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어야지.. 난 괜찮아 오빠"

 

언제나처럼 괜찮다고 말하는 정인의 목소리가 아프게 들린다. 차라리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

그래준다면 어쩌면 이 마음을 키워도 되지 않을까..  몹쓸 생각이 재하의 머리속을 채운다.

 

"하나만 묻자. 정인아"

 

"뭔데? 왜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겁나게.."

 

"그사람.. 만나고 싶지 않아?"

 

정인이 표정을 굳히며 재하를 올려다본다.

 

"갑자기..왜 그런걸 묻는거야.."

 

"이해가 안돼서 그래, 미국에 가자마자 악착같이 범죄심리 공부한거 그사람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서가 아니였어? 그런데 피하기만 하는건

왜 그러는거니? 니 생각을 알아야 내가 도와줄수 있잖아. 정말 니 마음은 어떤건데?"

 

정인의 깊은 한숨이 들려온다...

 

"처음엔.. 처음엔 그랬어.. 그렇게라도 곁에 있고싶다고.. 그런데 이제와서 내가.. 무슨 낯으로 그사람 앞에 나타나..

어떻게 그래.. 염치 불구하고 그사람 앞에 나타난다고 쳐도.. 그사람이 날 미워한다면.. 그땐..."

 

차마 끝맺지 못하는 정인의 다음말이 무엇인지.. 알고있다. 지금 제가 묻는것이 정인에게 얼마나 잔인한 질문인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 이렇게라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거니?"

 

정인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재하를 본다.

 

"만약 그 사람이 널 미워하게 된다면, 널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거냔 말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너 그 마음

정리할 수 있어? 아니잖아. 그럴거면 조금이라도 빨리.. 부딪혀 보기라도 해야 하는거 아니야? 바보같이 속으로만 끙끙 앓지말고 정인아..응?"

 

끝내 넘치고 마는 정인의 눈물을 닦아주며 재하는 그렇게 제 마음을 잘라내고 있었다..

 

 

 

 

***

 

 

 

 

며칠 후 . 서울의 모(某)대학 범죄심리학과 교수실.

재하가 미국에서 공부해온것은 심리학, 행동과학, 범죄수사심리학..

이쪽 방면에서만큼은 재하는 미국에서도 꽤 유명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적도 몇번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범죄심리사나 범죄심리분석관들 사이엔 재하를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재하가 귀국한다는 소식에 경찰 쪽에서 큰 관심을 보였고, 일자리를 제의 받은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재하는 대학의 교수직을 선택했다.

 

조교와 이야기를 나누던 재하가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조교에게 살짝 미소지어 보이자, 조교는 꾸벅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간다.

 

열려진 문으로 원국과 정인이 들어온다.

 

"회장님께서 어떻게.."

 

원국을 본 재하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 다가간다.

 

"이녀석 보러 갔었는데, 너와 약속이 있다면서 문전박대를 하지 뭐냐, 그러니 어쩌겠니. 내가 이녀석 따라 움직여야지. "

 

원국이 허허 웃으며, 정인의 머리를 콩 쥐어박는다.

 

"전화를 하지 그랬어. 약속이야 미루면 되는건데"

 

"선약. 알지? 선약이란말? 아빠가 전화도 없이 갑자기 오신게 잘못이거든?"

 

정인이 쥐어박힌 머리를 문지르며 또박또박 말하는 통에 재하는 괜스레 더 미안해진다.

 

"욘석아! 애비가 딸 보러 가는데 꼭 미리 전화까지 하고 가야하는게냐? 정인이 너한테는 이 애비보다 재하가 더 중요한게로구나."

 

"아빠는 또 쓸데없이.."

 

정인이 재하의 눈치를 보며 원국에게 살짝 눈을 흘기지만, 정작 재하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아직 식사 전이시죠? 회장님. 식사하러 가시죠"

 

"괜히 바쁜데 나까지 와서 곤란한건 아닌가 모르겠구나."

 

"그런말씀 마십시오. 회장님 뵙는것보다 바쁜일이 있겠습니까"

 

"허허. 재하야, 네녀석이 넉살이 아주 좋아진것 같구나 "

 

원국이 기분좋게 웃고, 정인도 두사람을 보며 밝게 웃는다.

 

 

==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한정식을 대접받고 나온 원국이 대견한듯 재하를 바라보고있다.

 

"재하야, 네가 사주는 밥을 다 먹고,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구나. "

 

"다 회장님 덕분이죠"

 

원국이 재하와 정인을 한번씩 번갈아보며 흐믓하게 웃는다.

아마도 그는 이대로 정인이 예전의 일들에서 벗어나 재하의 곁에서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을것이다.

 

"디저트는 젊은사람들끼리 즐기도록 이 늙은이는 여기서 이만 빠져주마. 정인이 너는 검사결과 나오면 전화주고. 알았지?"

 

"알았어요. 들어가세요 아빠"

 

"들어가십시오 회장님"

 

원국의 차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두사람은 그자리에서 그를 배웅한다.

 

재하는 정인을 차에 태우고,  커피 두잔을 사들고 돌아왔다.

 

재하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며 정인이 자못 심각해진 얼굴로 재하를 부른다.

 

"오빠..."

 

"왜?"

 

"후회하지 않겠어?"

 

"뭘?"

 

"학생들 가르치는걸로 되겠냐구.. "

 

"매일 삭막한 경찰아저씨들 보며 일하는것 보단, 쌩쌩한 젊은애들 보면서 일하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그래? 그리고 경찰쪽에서 의뢰하면

학교측에서도 충분히 내 편의를 봐주기로 했으니까 그런 표정 할거 없어."

 

"내가 자꾸 오빠를 주저앉히는거 같아.. 미안해 오빠.."

 

"그런소리 하지마. 난 지금도 충분히 좋으니까."

 

재하가 웃으며 정인의 코끝을 톡 건드린다.

그런 재하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이지만.. 정인의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건 어쩔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