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y L'amant/Bloody

태연정인 - 늦어서 미안해 5

Carna 2013. 12. 31. 04:04

 ***

 

 

 

"오빠..오빠! 잠깐만."

 

병원을 나오는 다른 입구를 향해 정신없이 휠체어를 밀던 재하가 제 손 위에 얹어지는 작고 따뜻한

손길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멈춰선다.

 

"천천히 가.. 못봤을거야.. 봤다면 벌써 쫓아왔겠지..."

 

왠지 서운해 하는것 같은 정인의 목소리에 불쑥 치밀어오르는 화를 느낀다.

 

"널 못봐서 서운해? 거기서 도망치고 싶었던거 아니였어? 그냥 뒀어야했나? 그런거야?"

 

날이 선 재하의 말투를 느낀 정인이 놀라 커진눈을 깜빡인다.


"화났어?.."

 

풀죽은 정인의 목소리...재하는 눈을 감아버린다..

 

"오빠..?"

 

"아니야"

 

"그럼..?"

 

대답대신 정인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맞춘다.

 

"화 안났어"

 

정인이 손을 들어 흐트러진 재하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넘겨준다.

 

재하는 제 머리칼을 만지는 정인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제 품에 안고 싶은 생각을 꾹꾹 눌러담으며
그저 살짝 웃어보이는것으로 정인을 안심시킨다.

 

"화난게 아니라.. 그냥.. 네 말처럼 운명의 장난이라기엔 너무하다 싶어서..그래서 그래"

 

마음이 아플텐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만큼 제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을텐데도.. 정인은
재하를 따라 살짝 웃어보인다.

 

"이런 기분도.. 언젠간 익숙해지지 않을까?.."

 

정인의 물음에 재하는 대답해줄 수 없다. 이런 만남에.. 이런 마주침에 익숙함이란 있을 수
없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또다시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에 마음이 데일것 같다.

 

 

 

 

**

 

 

 

건물의 옆으로 나있는 또다른 출구를 나와 차에 오른 정인과 재하.

 

병원 정문앞을 지날때. 무슨일인지 정인이 급하게 차를 세워달라고 한다.

 

"잠깐만.. 세워요, 세우라니까요!"

 

운전기사가 급하게 차를 세우고, 재하가 무슨일인가 묻는다.

 

"왜그래? 뭐 두고 왔어?.."

 

저만치 정인의 시선을 붙들고 있는 남자가 있다.. 재하는 곧 제 물음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고 입을 다문다..

 

어느덧 흘러내린 눈물이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걸 알고는 있는건지.. 정인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태연과 순범을 보고있다.. 아니 정확히는 태연을 보고있는 거겠지..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이 검은 세단의 차창이 어두운 색으로 짙은 선팅이

되어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민검사님.. "

 

조용히 흘러나오는 정인의 목소리..

그 부름을 들을수 없을텐데.. 들리지 않을것이 분명한데.... 왜 일까?....

 

차에 타려던 태연이 멈춰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시선에 아까부터 병원 입구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검은차가 들어온다.

 

다음 순간 태연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정인이 타고 있는 차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제 쪽으로 걸어오는 태연의 모습에 정인이 숨을 삼킨다..

 

삼켜진 숨을 뱉어내지도 못한채.. 기사에게 출발해달란 한마디를 못하고 그저 곁에 앉아있는 재하의 손만 꼭 쥐고 있다..

 

정인이 제 손을 잡아오는것에 고개를 든 재하의 눈에도 저만치 이쪽으로 걸어오는 태연이 보인다.

 

민태연.. 정인이 꿈속에서조차 그리워하는 그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대로 두사람을 만나게 해야하는걸까?.. 아니면..  아니라면...

 

"그만 출발하시죠."

 

생각을 멈춘 재하는 차를 출발시킨다.

 

자동차가 커브를 틀어 병원을 빠져나오고, 재하가 뒤돌아 태연을 보는동안.. 정인은 얼어버린듯
재하의 손을 꼭 잡은채 놓지 못한다.

 

병원을 나와 차가 도로에 들어서고 나서야 숨을 내쉬고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정인.

 

"오빠.. 나 어떡하지?....어떻게 해야하는건지.. 흑..."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어쩌면 좋으냐고..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이며 물어온다..

 

재하는 그저 조용히 정인의 머리를 제 가슴에 묻어준다..

제 품에 안겨서도 소리내지 못하는 정인이 안타까워 어느새 재하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크게 울어.. 소리내서 울라고!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르던가!"

 

누가 뭐라는것도 아닌데.. 그저 제 감정을 꾹꾹 눌러담으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먹이는 정인이
가엽고.. 답답해서 저도모르게 또 싫은소리를 해버린다.

 

지금 정인에게 해줄 수 있는게 고작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는것 뿐이라는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저를 품으로 끌어당기던 손이 부드럽게 제 등을 쓸어주자..잠깐의 망설임..끝에 결국 정인은 재하의 품에 얼굴을

묻고 소리내어 울음을 토해낸다.

 

"괜찮아.. 다 괜찮아 질거야. "

 

괜찮아 질거라는 이 위로가.. 정인을 다독이는 이 손길이....결국 하얀 거짓말이 될거라는걸... 재하는 알고있다.

 

정인이 제 곁에선 절대 괜찮아질 수 없다는걸.. 재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있다.

 


 

**

 

 

                                     

태연은 천천히 검은세단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왜 그런걸까.. 저 검은 유리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미치도록 확인하고싶다.

 

흐릿하게나마 안에 타고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일만큼 가까이 다가갔을때 아쉽게도 검은 차는 미끄러지듯 제 시선을 피해

자리를 떠난다.

 

누굴까.. 아니 누굴, 무엇을 보고 있었던걸까?

 

궁굼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만치 기다리는 순범에게 고개를 돌린다.

 

"무슨일이야?"

 

순범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다.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태연은 한동안 그자리를 떠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