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정인 - 늦어서 미안해 3
***
재하가 잠든 정인을 안아들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정인의 방에 그녀를 눕히고 나오려는 그의 뒤로 언제 깬건지 정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안자고 있었어? 괜히 안고왔잖아. 너 무거워."
재하의 말에 정인이 피식 웃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하자 재하가 재빨리 다가가 부축해준다.
"알아봤어?"
제 팔을 꼬옥 잡고있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외면하는 재하..
"뭘?"
"뭔지 알잖아.."
재하가 한숨을 내쉬며 제방으로 가서 서류봉투 하나를 가져다 정인에게 던져준다.
방문턱에 몸을 기댄채..봉투를 열어 내용을 살피는 정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재하의 입에서
다시한번 낮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왜 한숨쉬고 그래... 그냥 알아만 보는거라고 했잖아.. 궁굼증이야 궁굼증.. 알잖아.. 나 궁굼한거
있으면 잠 못자는거.."
부러 명랑함을 가장해 웃으며 말하는 정인의 표정이 어색하다.. 그런 그녀를 보는 재하의 입술이 달싹이길 여러번....
뭔지 꽤 오래 망설이던 그가... 정인을 부른다.
"정인아.."
"응?"
"그자식.. 아직 너 못잊었더라.. "
"그게 무슨소리..야.."
"아까 거기 왔더라.. 우리 떠날때까지도 거기 있었어..."
재하는 정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문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민태연 그남자때문에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그런 정인의 얼굴을 보고싶지않다. 그런데...
정인은 아무말도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재하가 내키지 않는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도 내지않고 눈물을 쏟아내는 정인을 본다.
저 눈물은.. 슬픔일까.. 기쁨일까..아니면.. 그리움일까..
"울지 말래도 말 안들을테니까.. 조금만 울어.. 언젠가처럼 울다가 기절하지 말고.."
재하가 돌아서 정인의 방을 나가고.. 닫긴 방문을 등진채 한참동안 떠나지 못한다..
***
검찰청을 나서는 태연과 순범의 발걸음이 바쁘다.
"그 병원이 맞대? 확실한거야?"
태연의 물음에 순범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임마. 속고만 살았나 쨔식이! 이 형을 그렇게 못믿냐?"
태연이 피식 웃으며 차에 타고, 순범도 씨익 웃으며 운전석에 오른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병원 주차장..
태연이 차에서 내려 병원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나도 여기 끔찍하게 싫다.. 하지만 어쩌겠냐?.."
"누가 뭐래.. "
태연의 마음을 알고 있는 순범이 괜히 제가 미안해져서 꺼낸 말에.. 아무렇지 않은척 대답한다...
원국의 조직이 운영하던 병원. 정인이 있던곳..
이 병원은 아직 원국의 소유다. 하지만 더이상 유원국은 조폭의 우두머리가 아니다... 정인이 죽은후 유원국은
마치 정인에게 속죄하듯 서서히 대한민국의 최대 폭력조직 수장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 순탄하기만 했던건 아니다.
조직이 나뉘는것에 불만을 품은 일부 조직원들의 반발로 한때 원국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이만큼 조직을 키워놓은 원국의 뜻을 존중해주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합법적인 사업체 몇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 병원도 그중에 하나다.
여하튼..이 병원이 그의 소유라는 것과.. 이곳에 정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태연의 발걸음은 무겁기만하다.
원국이 정인을 이 병원으로 옮긴 이후 병실에 붙은 절대안정이라는 팻말에 매번 그대로 돌아서야 했던 그때의 안타까움이 되살아나는것만 같다...
그만큼 이곳은 태연에겐.. 그리고 순범에게도 역시.. 발을 들이고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병원입구에서 순범이 태연의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그런데.. 그자식이 여기 나타나긴 하겠지?.."
"아들이잖아..아무리 몹쓸짓 저지른 범인이지만 자기 아들이 위험한 수술을 한다는데 와보지 않겠어? 아버지라면 말야.."
"아우.. 모르겠다. 일단 가서 보면 알겠지"
두사람이 병원으로 들어간다.
***
부암동 - 정인과 재하의 거처
"꼭 오늘 가야해?"
"가야해"
"내일 가면 안돼?"
"안돼!"
아침부터 시작된 재하와 정인의 실랑이가 점심시간을 넘긴 지금까지 계속되고있다.
"어차피 가야하는거잖아. 김선생님이 오늘 오라고 했고"
"치... 알았어 간다구 가! 잔소리쟁이야! 옷갈아입을꺼니까 김실장님 불러주고 나가!!"
병원에 가는일로 티격태격하던 두사람.
김실장을 정인의 방으로 들여보낸 재하가 방문밖에서 소리치듯 말한다.
"유정인! 내가 널 그냥 들춰메고 갈수도 있다는거 알고는 있냐?"
"몰라!"
정인의 방문앞 재하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정인을 기다리고있다..
**
병원 주차장에 세워진 검은세단에서 내린 재하가 곧바로 휠체어를 준비한다.
재하에게 안겨있는 정인이 병원건물을 올려다보고 재하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
"김선생님은 왜 계속 여기있는거래..나 여기 정말 싫은데.."
"사람이 어떻게 저 좋은것만 해?"
재하가 그녀의 머리를 콩 쥐어박는다.
손을 들어 재하가 쥐어박은 곳을 문지르던 정인이 한숨을 내쉰다.
"싫다 정말.."
정인이 왜 이토록 병원을.. 특히 이 병원을 싫어하는지 알고있는 재하의 발걸음도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