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정인 - 늦어서 미안해 10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
태연이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정인의 뺨을 쓰다듬은 후 일어선다.
"들어가도 될까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재하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십시요"
태연의 대답에 재하가 안으로 들어서며 손에 들린 서류를 흔들어보인다.
"이것 때문에 말이죠.. "
불안한듯 미세하게 떨리는 재하의 목소리.. 재하의 시선이 눈물로 얼룩진 정인의 얼굴에 멈춘다.
차마 말로 하지 못하고.. 재하가 한껏 걱정을 담은 눈빛으로 정인에게 묻는다.
괜찮은거냐고..
정인은 그 눈빛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다. 그제야 재하는 나지막하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태연에게 서류를 건낸 재하가 정인의 뒤로 가서 서며 묻는다.
"이제 뭘하면 되지?"
정인을 향한 재하의 물음에 태연이 한발짝 정인에게 다가선다.
"괜찮으면.. 잠깐 기다려줄수 있을까?"
"그럴께요.."
길건너 커피숍에서 기다리겠다는 재하의 말에 태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정인의 앞에 다시 무릎을 굽혀 눈을 마주한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테니까.. "
다짐받듯 정인의 눈을 보며 말하는 태연의 모습에....재하가 고개를 돌린다.
정인을 향한 태연의 다정함이.. 재하의 마음을 할퀴고 있다....
**
경찰청의 길건너편.
커피숍에서 태연을 기다리는 정인은 커피숍의 커다란 통유리 너머 횡단보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커피 다 식는다. "
"응.."
커피잔도 재하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채 건성으로 대답하는 정인.
재하가 낮은 한숨을 뱉는다.
"온다고 했으니 오겠지. 좀 느긋하게 기다려도 되잖아 이제"
그제야 정인은 피식 웃으며 재하에게 눈을 돌린다.
"느긋해지지가 않아.. 나도 모르겠어. 왜그런지.. 그런데 오빠"
머뭇거리는 정인에게 왜그러냐 묻는 재하.
"알고 있었던거지? 민검사님이 거기 올거라는거."
"아니, 난 몰랐는데?"
"오빠!"
"정말이야 인마, 사건이 특검팀으로 갈건 알았지만 민태연 그 사람이 올줄은 몰랐으니까"
정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아직도 못믿겠다는듯 재하를 흘겨본다.
"가자미눈 되겠다. 커피나 마셔, 이럴줄 알았으면 아이스커피로 시킬걸 그랬네"
재하의 장난스런 말에 정인이 또한번 피식 웃는다.
"고마워... 오빠 "
고맙다는 정인의 말이 왜 이렇게 아프게만 들리는지 모르겠다. 겉으로 웃어보이지만... 재하는 이런 연극을 언제까지 할수 있을지
점점더 걱정스러워진다.
"고맙긴 .. 근데.. 얘기는 잘 된거 맞는거지? 너에 대한 오해는 다 풀린거야?"
"오해는 아니지.. 내가 그사람한테 한짓이 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던건..
못난 내 이기심에 대한 자기합리 같은거였는지도 모르겠어.."
재하가 뭐라 말해주려 하지만 정인의 시선이 이미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기에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기다리게해서 미안해. 미안합니다."
정인과 재하를 향해 말하는 태연.
"그럼 전 나가서 기다리죠. 차에서 기다릴께 정인아."
"기다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정인은 제가 데려다 주도록 하죠. 먼저 가셔도 됩니다."
태연의 말에 재하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채.. 그저 정인을 향해 그래도 되겠냐고 묻는다.
"응.. 괜찮아 오빠 먼저 들어가"
이미 알고 있었다. 정인의 대답정도는.. 그런데도 가슴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찬바람이 불어온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연을 향해 정인을 부탁하고 돌아서는 재하는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한다.
**
재하가 떠나고.. 남겨진 두사람은 입을 닫은채 찻잔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태연이 픽 웃음을 터뜨린다. 정인이 그 웃음에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연을 본다.
"좀 우스워서.. 얼마만에 만난건데.. 죽은줄 알았던 널 만났는데.. 이렇게 멍하게 있다는게.."
정인이 동의한다는듯 수줍은 웃음을 보인다.
"그런데.. 그사이 새직업까지 구한거야?"
"네?"
"프로파일러라고 소개 받았잖아 아까. 좀 의외라.."
"아..미국에서.. 공부했어요.. 오빠가.. 재하오빠가 그쪽으로 오랫동안 공부했거든요.. "
"왜 하필 그런걸 했어.. 살인사건이니 강력범죄니 지겹지도 않아?"
"그건.. "
쉬이 대답하지 못하는 정인의 모습.. 괜한걸 물었다 싶어 태연이 입술을 깨문다.
"그냥 해본 소리니까, 대답하려고 애쓸거 없어."
"가까이 가고싶었어요.. 그렇게라도.. 민검사님곁에...."
어느새 정인의 얼굴은 잘익은 홍시가 되어있었다. 그런 정인의 모습에 태연이 다시 피식 웃는다.
"하나도 안변했네.. 유정인은.."
어느덧.. 예전의 정인을 떠올리는 태연의 눈길이 정인이 몸을 의지하고 있는 휠체어로 옮겨간다.
"그런데..."
"네?"
"다리는.. 상태가 어떤거야? 이제 나도 알아야지.."
"아... 아주 못쓰진 않아요. 보조기 착용하면.. 걸어요. 몇걸음뿐이지만.. 하핫.."
아무렇지 않다는듯.. 저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듯.. 태연이 걱정할걸 염려하는게 그대로 다 드러나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다.
"제거하지 못한 총알이 있다고 들었어. 아픈데는 없어? 검진은 얼마만에 한번씩 받아야 하는거야? 최근엔? 받아본거야?"
누가 민태연 아니랄까봐.. 몰아치듯 예전처럼 걱정섞인 잔소리를 늘어놓는 태연의 모습에 정인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왜 웃어?"
"정말.. 민검사님도 전혀 않변하셨네요. 검진 받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얼마전에도 병원 다녀왔어요. 그러니까 숨좀 돌리세요."
그제야 태연은 제가 너무 한꺼번에 몰아붙였구나 싶어 미안해진다. 그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정인은 금새 화제를 돌린다.
"황형사님이랑.. 동만이.. 잘있죠?.."
"잘 있어. 동만이는 정규직 됐고"
"그래요?! 잘됐네요. 잘됐어요..정말.. 황형사님은 지금도 첫사랑 못잊고 있어요?"
"잊었어."
"정말요?"
흥미롭다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묻는 정인의 모습이 정말 하나도 변한게 없다.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는것 같더라구. 그러니 잊은거겠지"
"잘됐네요. 황형사님도.. 다 잘지내서 정말 다행이에요.. "
"만나봐야지.. 둘다"
"미움받겠네요.. 저.."
정인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씁쓸한 웃음이 걸린 정인의 표정에 태연의 마음이 좋지않다.
"그렇지 않을꺼야. 다들.. 이해할꺼야.. 내가 그런거처럼"
"네.. "
정인이 미소지으며 태연을 향해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