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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L'amant/Bloody

태연정인 - 이유(理由) 6

 

***

 

 

 

"유검... "

 

정인의 눈물에 놀란 순범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아니... 나는 그냥.. 혹시라도 태연이랑 뭔일이라도 있는지.. 그녀석이 유검한테 또 뭔 실수라도 한건 아닌가... "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던 순범은 그래도 여전히 그칠줄 모르는 정인의 눈물에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순범의 잘못이 아닌데.. 자꾸 솟아나는 눈물이 원망스러워 마음이 울컥.. 자꾸만 더 서럽다.

 

"아..뇨.. 황형사님 잘못하신거 없어요.. 모르겠어요... 왜 이러는지...  죄송해요"

 

"나한테 미안할거야 뭐 있어요. 살다보면 이런날도 저런날도 있는건데.. 오늘은 그런 날인거지.... 울고싶으면 그냥 울어요."

 

커다란 순범의 손이 어깨를 다독여주자 눈물은 때를 만난듯 더더욱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울었을까..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쏟아지던 눈물이 잦아들고 정인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연애하냐고.. 물으셨죠.. 그게 연애인지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그치만.. 좋은사람 인건.....맞아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든 그렇게 저한테 따스하게 대해준게.. 처음인거 같아요. 그래서.. 자꾸 기대고 싶어져요 그사람한테...

 내가 누구 딸인지.. 내 아빠가 누군지 알면서도 제가 좋대요. 볼때마다 예쁘다.. 좋아한다 말해주는게 .. 싫지 않아요.

 매일.. 시간맞춰 보내주는 문자가 반갑고.. 기다려져요. 텅빈 집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을때 걸려오는 전화가 반갑고..그 목소리에 안심이 되요.

 이런게 사랑이고.. 연애라면.. 네..  저 연애하는거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런데 ... 정말 이상한건.. 아니, 정말 참을 수 없는건..

 그때마다.. 나한테 작은 틈도 보여주지 않는 민검사님이 생각나고.. 나한테 요만큼도 관심조차 없는 민검사님한테 미안해진다는 거에요.

 내가.. 왜 이렇게 민검사님한테 죄짓는 느낌인건지.. 그게 이해가 안되요. 그게.. 정말 화가 나요."

 

정말 정인에게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내려앉았다가..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가..

또 한편으론 아직 태연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순범은 정인에게 미안해진다. 이 와중에도 자신은 정인의 마음보다는 제 동생 걱정을 먼저 한다는것이 씁쓸하다.

 

"유검.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도 유검이 아직 태연이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다는게 더 신경이 쓰여요. 나도 이런 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여지껏 누구보다 두사람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잖아요 내가.  그렇다보니 난 아직 유검이 내 못난 동생녀석 포기하지 말아줬음 하는게

 사실이지.. 남 같으면 태연이 같이 무뚝뚝하고 제 마음 하나 제대로 표현 못하는 멍청한 녀석 신경도 쓰지 말라고 하겠지만 나한테 그녀석이

 그냥 남이 아니니.. 어쩌겠어요...그저.. 내가 말해줄 수 있는건.. 태연이 녀석이 유검한테 아무 관심이 없는건 아니라는거에요. 지금도 유검한테

 누가 생긴건 아닌지 전전긍긍 하고 있다는것만... 그러면서도 그녀석이 더 적극적으로 나오지 못하는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것만 알아줘요. "

 

사람의 마음이란 왜 이토록 간사한걸까.. 저때문에 전전긍긍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그에 대한 마음이 다시금 몽글몽글 가슴속에 차오른다.

 

"그럴만한 이유...그게 뭘까요...."

 

대답 대신 돌아오는 순범의 깊은 한숨에 정인은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한다.

 

"다 알지도 못하지만.. 설령 안다고 해도 내가 말할건 아니지 않겠어요...  사실 유검이 누구랑 사귀든 사랑을 하든 내가 물을 입장 아닌것도

 알지만.... 태연이나 유검이나 .. 곁에서 보는 나는 다 알것같은데.. 자꾸 엇갈리는 두사람 마음이 안타까워서 그래요"

 

"제가 묻는다면.. 저에대한 마음이 어떤건지.. 왜 그렇게 차갑게만 대한건지 묻는다면.. 민검사님은 대답해 주실까요? "

 

속시원히 대답해 줄 수 없는 순범의 마음도 답답하기만 하다.

 

"글쎄요.. 그녀석 속을.. 나도 다 모르겠으니.. 원..."

 

순범의 대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정인이 괴로움과 답답함에 입술을 깨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순범을 향해 정인이 힘겹게 웃어보인다.

 

"먼저 내려가세요. 전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그러라며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게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린다.

몇번이나 돌아보는 순범의 눈에 비친 정인의 모습이 어느때보다 작아보여 안쓰럽다.

 

 

 

 

사무실로 돌아온 순범은 곧장 태연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빤히 태연을 바라보던 순범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무슨말이라도 어서 해줬으면 싶은 조급한 마음에 순범을 바라보는 태연의 시선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

순범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그런 태연의 시선을 피한다.

 

"태연아.. "

 

"왜그래... 형"

 

"너 유검 포기해라.."

 

뜻밖의 말에 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여태 머뭇거리며 다가가지 못하는 저를 탓하던 사람의 입에서 이제와서 그녀를 포기하라는 말이 나올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누가.. 있긴한가보네.."

 

자조적인 웃음이 섞인 태연의 말에 순범은 다시한번 깊은 한숨을 뱉는다.

 

"누가 있는게 문제가 아니다 태연아. 그래 물론 그것도 문제긴 하지. 얘기로는 꽤 괜찮은 사람같긴 하더라만.."

 

"괜찮은 사람...."

 

자신에게 납득시키듯 되뇌이는 태연의 목소리가 아프게 들린다.

 

"유원국이 유검 아버지인것도 다 아는 모양이더라. 그런거 문제삼지 않고 잘해주나봐. 유검이 부모사랑도 제대로 못받고 자란거 알잖냐.

 곁에서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 하나 없이.. 너도 너지만 나도 너무 무심했다 싶더라. 그래도 매일 얼굴 마주하는 시간이 제일 많은게 우린데

 일 없는 날도 늦게까지 남아서 사무실 지키던 마음도 헤아려주질 못했으니..  뭐.. 그것도 그거지만 ....

 니가 유검한테 마음이 있으면서도 가까이하지 못한 이유말이다. 너  그거 유검한테 말할 수 있겠냐? 니가 왜 그동안 유검한테 적극적으로

 말한마디 먼저 건네지 못했는지 그거 유검한테 털어놓고 이해시킬 수 있겠느냐 말이다.  자기가 물어보면 대답해줄까 묻더라.

 유검에 대한 니 마음이 어떤건지 왜 그렇게 차가웠던건지 물으면 대답해줄까 묻더라. 그런데 태연아.. 나는 그 말에 대답을 해줄 수가 없더라... 

 넌 대답할 수 있겠냐?"

 

한참을 말이 없는 태연을 보며 순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신 없으면 정리해라. 차라리 딱부러지게 동료이상은 아니라고 못박던지. 당장이야 아프겠지만 .. 어쩌면 그편이 낫지 싶다"

 

태연은 아픈말만 골라서 해버리는 순범에게서 등을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등뒤로 순범이 집무실을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에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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